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 폭탄’이 결국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구심점으로 자리 잡아온 자유무역질서를 관통하며 국제경제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도 유지돼온 세계무역기구(WTO)의 큰 틀이 미국의 ‘무역확대법 232조’ 적용 예고로 사실상 깨지게 되자 국제사회는 순식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 보복이 난무하는 정글로 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발 통상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등 글로벌 경제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미증유의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관세 발표 이후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일찌감치 통상보복전을 예고했다. EU가 할리데이비슨과 버번 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를 타깃으로 삼아 보복관세로 맞불을 놓겠다고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로 응수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중국도 대두와 수수 등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보복관세 검토에 나선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제품에 부과되는 만큼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매기는 ‘호혜세(reciprocal tax)’ 도입 등 또 하나의 메가톤급 수입 규제 조치를 예고했다.
트럼프의 ‘통상 폭주’가 멈추지 않을 경우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상승 흐름을 타고 있는 세계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시장에서는 트럼프의 철강 관세가 글로벌 증시를 뒤흔들 ‘블랙스완’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블랙스완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한번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다.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를 1930년대의 대공황 같은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경고도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보복전이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인 중국이 보복조치로 국채 매각을 실행에 옮길 경우 본격적인 미중 환율전쟁이 발발해 글로벌 금융질서마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다음달 발표할 환율보고서에서 포문을 열 가능성도 열려 있는 가운데 한국이 중국과 함께 미국 환율 압박의 직접 타깃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와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마땅한 카드도 없이 글로벌 통상·환율전쟁의 포화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고 물리는 경제전쟁의 서막이 올랐는데도 우리 정부는 무방비 상태로 수출 타격을 우려하며 한숨만 쉬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중국 등 각국의 보복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한국이 무역전쟁이 끝날 때까지 눈치만 살피다가는 아무런 해결책 없이 피해만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kls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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