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해외자원개발 철수는 처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외환위기가 덮치자 한국전력과 한국석유공사 등 공기업은 해외자원개발 지분을 서둘러 팔았다. 당시로서는 구조조정이었지만 급하게 팔다 보니 제값을 못 받았다. 헐값으로 매각된 이들 자산은 해외 각국에 팔려나가 글로벌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
호주의 유연탄과 미국과 캐나다의 우라늄 광산이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과 국내 민간기업으로 구성된 벵갈라 컨소시엄은 지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해당 사업 지분 7.5%를 팔았다. 한전은 사업 조정이 목표였고 현대 같은 민간업체는 자금 수지 개선이 급했다. 벵갈라 유연탄광은 지난해 기준으로 850만톤을 생산했다. 매각 이전 지분 7.5%를 감안한다면 연간 63만8,000톤의 유연탄이 국내로 들어왔거나 해외에 팔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유연탄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발전연료 중 비중이 가장 높은 유연탄 가격은 2015년 톤당 57.56달러에서 2016년 66.03달러, 2017년 88.30달러까지 올랐다.
한국전력도 2000년 사업구조 개편의 이유로 호주의 베이스워터 유연탄광의 지분 5%를 전량 매각했다. 한전이 발을 뗀 후 베이스워터 사업은 2001년 인근의 마운트아더 광산과 합병 이후 생산량이 증가해 2016년 기준으로 연간 1,700만톤을 기록했다. 한전이 이를 보유했으면 어땠을까. 연간 85만5,000톤의 유연탄의 자주 개발량을 확보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베이스워터와 벵갈라에서 생산이 가능했던 150만톤의 가격을 지난해 기준 톤당 88달러로 환산하면 1억3,200만달러다. 2018년 2월 기준으로 유연탄 가격은 톤당 100달러까지 오른 상태다.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라늄 자원개발 사업도 구조조정 논리에 따라 성급히 사업을 철수한 사례로 분류된다. 한전은 1999년 개발단계로 진입했던 캐나다 시가레이크 우라늄 광산의 지분 2%를 매각했다. 청산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던 시가레이크 우라늄 광산은 우리나라가 발을 뗀 후 15년 뒤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2016년 기준으로 7,947톤이 생산된다. 한전은 미국 크로뷰트 우랴늄광도 2000년 지분 10%를 매각했다. 특히 이들 광산은 투자비 대비 자금 회수율이 극히 낮아 매각 협상도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현재는 우라늄 가격이 20달러로 떨어졌지만 2,000년대 중반 우라늄 가격은 120달러로 치솟아 아쉬움을 더했다.
1999년 한국석유개발공사도 이집트의 칼다 광구 지분 2%를 호주 노버스사에 800만달러에 매각하며 해외 사업 철수 행렬에 몸을 실었다. 투자액을 회수했다는 이유였지만 칼다 광구는 석유공사가 지분을 판 뒤 4억달러였던 광구의 가치가 42억달러까지 올랐다.
공기업이 발을 떼자 민간기업 역시 해외자원개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LG상사는 IMF 위기 당시 칠레 로스펠럼브레스 광산을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에 투자 금액의 2배를 받고 팔았다. 당시에는 “잘 팔았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인수한 일본 기업들이 추가 투자해 연간 생산량만 75만톤에 달하는 동광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투자금 회수까지 오래 걸리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긴 호흡’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는 석유공사가 보유했던 영국 북해 캡틴 광구다. 1999년 감사원은 석유공사가 1996년 인수한 캡틴 광구 투자가 막대한 손실을 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석유공사는 이 광구를 보유했고 2011년 10월에 투자비 대비 2억3,000만달러(약 2,600억원) 수익을 남기고 팔았다.
자원개발 업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해외자원개발을 무리하게 추진한 측면도 있지만 당시 분위기는 ‘IMF 때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것’”이라며 “무분별한 자원개발 추진에 대한 실패는 지적하되 각국 정부와 민간기업의 자원개발의 가교역할을 하는 공기업의 해외투자를 막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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