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일정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을 면담하고 온 대북특사단이 귀국 직후인 6일 오후 발표한 방북 결과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 전쟁위기가 재점화되는 것을 피하자는 남북 간의 공감대를 반영하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용납할 수 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안보관과 미국의 예방적, 혹은 선제타격 가능성을 피해 체제유지를 보장 받으려는 김정은 정권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를 위해 우선 현 정부가 ‘주도적’으로 주선하려고 노력해온 북미대화의 문을 노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록 대화 지속과 대북군사위협 해소 등이 전제로 깔리는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핵·미사일 개발 유예(모라토리엄)와 폐기(비핵화)의 의지를 북측이 천명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이 오는 4월 말 판문점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달에는 한미 군사훈련 재개를 계기로 북한이 군사 도발을 재점화할 수 있고 이것이 자칫 미국을 다시 자극해 대북 군사옵션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남북 모두 이 같은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긴장 고조의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분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내걸어 최소한 4월 위기설은 넘기고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수석대북특사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남북 간에 정상회담을 재개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그렇기에 그것을 양측이 할 수만 있다면 가급적 조기에 개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완곡히 돌려 말했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되고 북한이 비핵화 대화 의지를 표명한 데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정은이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특사를 맞았다’는 내용 등을 담은 드러지리포트 기사를 리트윗(재전송)하며 이같이 밝혔다.
한반도 위기의 또 다른 도화선은 남북 간 우발적 군사충돌 상황이다. 지난 보수정권 집권 10년간 남북관계가 경색돼 양측간 군사적·외교적 소통 채널이 소멸했다는 게 현 청와대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우발적 오발 사고가 나더라도 서로 상대방에 대한 공격으로 오인해 국지적 등으로 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번 대북특사가 남북 정상 간 핫라인 개통 합의라는 성과를 가져오면서 상호 오판에 의한 전쟁 발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게 됐다.
다만 대북특사를 통해 이뤄낸 이번 결실이 실제로 북미대화 실현과 북한의 핵동결·비핵화로 이어지려면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우선 북측이 대북특사를 통해 제시한 조건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이 트럼프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는지 여부를 예단하기 이르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대화의 문턱은 최소한 북한이 핵동결 등의 약속을 깨고 다시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불가역적인(CVID) 핵 폐기’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김 위원장이 어느 정도나 부응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특히 핵과 미사일 시설을 봉인 및 폐기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등을 수용할 의지가 있는지 등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측이 대북특사와의 협의에서 핵 개발 유예와 비핵화의 전제조건을 내세운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 보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점도 앞으로 풀어야 할 대목이다. 이것이 단순히 한미의 공세적 군사옵션 실행 자제나 비핵화 이행에 상응하는 단계적 대북제재 해소 및 경제 지원 등의 수준이라면 한미 양국이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북한의 노림수가 한미 군사훈련의 축소 및 폐지, 주한미군의 축소·철수, 한반도에서의 미군 전략무기 철수와 같은 무리한 수준이거나 지나치게 절차를 앞서나가 북미평화협정체결로 직행하려는 수준이라면 한미 모두로부터 거부당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자칫 김정은 정권이 국제적 제재와 압박으로부터 숨을 돌리며 시간을 버는 데 남북대화가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살 수도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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