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문고리 3인방’이 국가정보원 특활비 사용은 관행이라고 보고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고 나섰다. “국정원 돈을 써도 괜찮다는 건의를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박 전 대통령이 먼저 알아보라 했다”는 게 요지다.
안 전 비서관은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 같이 증언했다. 안 전 비서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5월께 “국정원장과 예산 관련 얘기를 한 게 있는데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보라”고 그에게 먼저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안 전 비서관은 청와대 서별관 밖 정원에서 남 전 원장을 만나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전했고, 남 전 원장은 그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알겠다”고 답했다는 것. 안 전 비서관은 당시 남 전 원장의 반응을 보고 ‘대통령과 이미 얘기를 나눴구나’라고 추측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통령에게 국정원 돈을 받아 써도 괜찮다고 건의한 적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단호히 “없다”고 답했다. 안 전 비서관은 “저희(문고리 3인방)는 대통령 지시 사항을 이행하는 실무를 충실히 했지, 뭘 개입하고 건의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안 전 비서관은 국정원 특활비 상납이 중단된 경위도 털어놓았다. 지난 2016년 7월 언론이 미르 재단 설립 의혹을 보도하자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이 “상납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얘기했고, 이를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곧 중단됐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국정원 특활비 상납을 지시하고 중단한 모든 과정은 박 전 대통령 주도로 이뤄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현재 자필 의견서로 재판을 진행 중인 박 전 대통령 주장과 전면 배치되는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선변호사에게 건넨 자필 의견서에서 “취임 직후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등 전 청와대 비서관들로부터 ‘국정원에 지원받을 수 있는 예산이 있고 관행적으로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어 “‘법적으로 아무 이상 없으면 사용하라’만 했지 구체적 액수나 사용처는 보고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국정원 특활비 존재를 모르던 상황에서 문고리 3인방이 이를 알려줬고 사용도 그들이 자의적으로 했다는 주장이었다.
한편 안 전 비서관에 앞서 증인으로 나선 이재만(사진)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내 형사재판도 현재 진행 중”이라며 증언을 거부했다. 그는 검찰 측 신문에 대해 “이미 아는 대로 답변했다”며 진술 조서를 참고하라고 한 뒤 입을 닫았다. 다만 이날 검찰을 통해 그 역시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 상납을 적극 주도했다고 진술한 것이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비서관은 2013년 4월 “국정원에서 봉투를 가지고 올 테니 청와대 특활비처럼 잘 관리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얼마 있느냐”며 특활비 잔고까지 챙겼다고 진술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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