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원이 예전에는 단순히 가사소송 등을 심판하는 역할만 했다면 이제는 재판 이후에도 건전한 가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최근 서울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에서 만난 성백현(59·사진) 서울가정법원장은 가정법원이 법 집행기관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우리 사회가 마주한 ‘가정 해체’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 법원장은 “예컨대 이혼 판결 후에도 미성년 자녀가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는지 감독한다든가, 상속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고령자들에게 유언서 작성을 교육하는 일 등도 가정법원의 주요 업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법원이 사법기관이라는 점에서 입법·행정 업무 추진에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역할 확대에 대한 그의 믿음만큼은 확고해 보였다.
가정법원은 가족·친족 간 다툼이나 가정·소년에 관한 사건을 맡는 전문법원이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울산 등 7곳에 설치됐다. 특히 지난 2011년 이후 설립된 다른 법원과 달리 서울가정법원은 1963년 일찌감치 설립해 올해로 개원 55주년을 맞는 맏형 가정법원이다. 정책·시설 등 전국 가정법원의 각종 표준은 이곳이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2월 성 법원장 취임 이후부터는 ‘가정법원은 이혼하러 가는 곳’이라는 편견을 깨는 시도를 여럿 추진하고 있다. 먼저 이혼 가정에서 비양육 부모가 아이를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인 ‘면접교섭실’을 지난해 4월부터 야외에도 설치했다. 이혼 가정 아이들의 활기를 고려한 조치다. 최근에는 면접교섭실이 아예 없는 일본에서 법원 관계자들이 찾아와 시설을 둘러보기도 했다.
또 같은 해 7월에는 고령자·장애인들을 보호하는 성년후견제도를 후견개시사건 접수부터 후견감독사건 말소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성년후견센터도 출범시켰다. 후견인 교육과 사무를 한 곳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다 보니 친족후견인의 이용이 급증하는 것은 물론 다른 지방 가정법원에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올 10월에는 이와 관련해 서울가정법원 주관으로 세계 후견 관련 전문가 500여명이 참석하는 ‘세계성년후견대회’도 열 예정이다.
성 법원장은 “야외 면접교섭실, 성년후견센터의 내실화와 활성화는 법원의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부모의 이별을 경험한 자녀가 청소년기 문제를 일으키거나 성년이 돼서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가정법원이 가정 분쟁의 사전예방 기능을 겸하는 법원이 되기 위한 제도·정책 방안을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모색 중”이라며 “무연고자 등 친족이 없는 사람에 대한 후견심판청구 건수가 미미한데 금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지난달 2일에는 가사 사건에서 파생되는 민사 소송까지 모두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법원 역할을 확대하는 내용의 가사소송법 전면 개정안도 법무부를 통해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현재 양육비 3개월 미지급 시 내려지는 법원 감치처분을 1개월로 당기는 내용도 담겼다. 양육비 지급률이 20% 안팎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해 가정법원이 판결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행까지 적극적으로 유도하려는 시도다.
성 법원장은 “이혼판결 이후에도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가사소송법 개정안은 올해 국회를 통과해 내년께 시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 법원장은 나아가 양육비 지급의무자의 정보를 상대에게 일부 공개하는 방법 등 양육비 지급률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여러 방안도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등의 경우 아빠의 직업·소득·소재지 등을 엄마가 아주 쉽게 알 수 있게 해 아빠의 회사에서 자동으로 양육비가 빠져나가게끔 제도가 설계됐다”며 “다만 사생활 침해 문제가 대두될 수 있어 국내 적용은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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