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는 남북·북미 대화로 시작된 이른바 ‘문재인 프로세스’의 성패가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어떠한 방식이든 북한의 체제안전은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가 풀릴 경우 한반도 6자회담을 넘어 동북아 다자안보 체제까지 가능하다는 게 고 교수의 전망이다.
고 교수는 18일 서울경제신문·현대경제연구원 공동주최로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반도경제포럼’에 발제자로 나서 “과거 협상은 ‘안보 대 경제 교환’ 방식으로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 보장과 관련된 평화 체제 논의를 비핵화 진전 이후로 미뤄 북핵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연계해 최고 지도자들 간 정치적 결단에 의한 ‘안보 대 안보 교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과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주도한 것으로 잘 알려진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의 지론이기도 하다. 고 교수는 “페리 전 장관은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경제제재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시킬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하더라”면서 “변화된 환경 속에서 북미 입장을 좁히는 한국형 북핵 해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소개했다.
북한은 그동안 평화협정 외에도 불가침조약 등 다양한 형태의 체제안전 보장 방안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요구해왔다. 고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로 알려진 ‘종전선언’에 대해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잠정협정’과 유사하게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어 북한이 관심을 가진 것 같다”면서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잘되면 종전선언 등 말 대 말, 공약 대 공약 형식의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선언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종전선언으로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문제가 해결될 경우 한반도 정세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고 교수는 이후 상황 전개와 관련해 “중국을 포함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나아가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을 보증하고 동북아 다자안보협력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섣부른 대북제재 완화의 위험성과 관련해 고 교수는 “우리 정부는 제재 압박의 틀을 허물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면서 “남북 경제협력 등은 부각되지 않는 형태로 (정상회담을) 운영할 것 같고 북한도 이를 이해하는 것 같다”고 관측했다. 특히 “남북이 합의한다고 해도 유엔 안보리 제재와 양자 제재 등이 있어 경협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북한도 하고 있는 듯하다”면서 “대북 특별사절단 접촉 등에서도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만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는 ‘톱다운’ 식 협상 국면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고 교수는 “지금 협상 국면은 남북미 정상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접근하고 최고지도자의 결심에 따라 움직여 위협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며 “‘북미 회담은 없을 수도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급은 그런 위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비핵화와 관련한 남북미 3국의 입장 차도 위험 요인이다. 고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관련해 “지금까지 개발한 핵은 체제보장 전까지 대미전쟁의 억제력으로 두고 ‘2차 능력’으로 불리는 핵무기 대량생산 부분을 동결하는 협상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막고 핵 시설을 동결하는 선에서 만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추론한다”면서 “북한 내 억류된 미국의 인질을 석방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예측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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