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은 지난 4·27 정상회담에서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최종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를 완성하고 항구적 평화 정착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먼 길이 남았지만 주어진 시간은 촉박하다. 북한이 이미 핵무력을 사실상 완성한 상태이므로 과거처럼 점진적으로 일을 풀어나갈 여유가 없다. 주요 당사국들이 과감하게 결단하고 빠르게 이행하는 ‘속전속결’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이를 위한 릴레이 외교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하반기까지 양자·3자·4자 정상회담을 비롯해 그 이상의 다자 무대에 이르는 순차적 국제협상 등이 기대된다. 특히 핵 문제는 가급적 남북 및 남북미의 2인3각이나 3인4각 레이스로 풀되 북한에 핵 포기를 유도할 인센티브로 제공할 체제 보장 및 공동 번영의 길은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과 협력해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정상회담의 향후 순서는 대략 ‘한중일→한미→북미→남북미 혹은 남북미중→한·러시아→남북’의 순서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북중 및 북일 정상회담이 각각 북미 정상회담 전후에 이뤄질 여지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6자 정상회담이나 유엔 차원의 정상 간 만남 등과 같이 보다 확장된 정상 간 협상 테이블이 차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외교 릴레이의 핵심은 두말할 필요 없이 한반도 비핵화다. 북한이 핵을 완전하게 포기하기로 하고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후속 논의도 진전될 수 없다. 문제는 담판의 테이블에 누가 앉느냐다. 북한은 그동안 핵 문제에 대해 북미 간에 풀 일이라는 입장을 거듭 천명해왔다. 비핵화를 담보로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과 불가침을 확약받으려는 차원이다. 우리 정부가 지난 27일의 남북 정상회담을 향후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삼으려 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의 의도로 풀이된다. 비핵화 담판장의 협상 테이블 구성을 다자 회담이 아닌 양자 회담으로 최대한 단순하게 꾸려서 협상 대상국들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담백하게 핵 문제에만 집중해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하려는 차원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도 “과거의 비핵화 협상을 보면 6자 회담과 같은 다자 테이블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려다 보니 핵심 당사국인 남북미 이외에도 중국·일본·러시아와 같은 주변국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과감한 합의에 이르기가 무척 어려웠고 결론을 도출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되짚었다. 이어 “이번에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우선 비핵화를 위한 핵심 의제는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풀어가고 그 성과에 따라 후속되는 실천 문제와 합의 보장 방안, 경제 협력 등은 과거와 같이 다자간 협상의 틀로 이어가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설했다.
북미 회담에 이르기 위한 징검다리는 아직 남아 있다. 오는 5월9일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과 같은 달 중순께로 점쳐지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만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듣고 그 결과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해 대북 협상의 최종 전략을 코치해주는 흐름인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5월 하순, 늦어도 6월 초순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것으로 기대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등을 약속한다면 곧이어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작업에 시동이 걸리게 된다. 한국이 기존 정전협정 당사국인 북미중 정상과 4자 회담을 열거나 한미일 3국 간 정상회담이 우선 만나 항구적 평화정착 문제를 논의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기존 6자 회담의 당사국인 러시아와도 6월 정상회담을 열 계획이다. 남북 경협과 신북방정책을 성공시키려면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수적이어서 주로 경제 분야와 관련한 이야기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사이에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일정들이 순항한다면 오는 가을 무렵 문재인 정부의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된다. 27일의 1차 회담이 주로 비핵화 등 안보 문제를 의제로 삼았다면 2차 회담은 경협과 교류 활성화에 주안점을 맞출 수 있다고 청와대와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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