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비핵화의 속도를 내기 위해 ‘최대 압박’과 ‘최대 보상’을 동시에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렸다.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0년까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를 이뤄낼 경우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누리도록 대대적인 대북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직접 원조를 핵심으로 하는 ‘마셜플랜’이 조지 마셜 당시 미 국무장관의 이름을 딴 것처럼 이번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민간기업의 대북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폼페이오 플랜’을 제시한 셈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채찍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당근을 들고 대북 메시지에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볼턴 보좌관은 CVID를 한 단계 강화한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 카드를 다시 꺼내 들며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원칙으로 북한을 압박했다. 그는 13일(현지시간) ABC방송 인터뷰에서 “비핵화 절차가 완전하고 불가역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북한에 대한 보상 혜택이 흘러들어 가기 전에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며 “그 결정의 이행은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주의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이 폐기할 핵시설과 핵물질을 보관할 미국 내 장소까지 공개적으로 특정한 것은 처음이다. 테네시 오크리지는 미국의 핵과 원자력 연구 단지가 있는 지역으로 과거 리비아 핵 협상을 통해 폐기한 리비아의 핵시설과 핵물질을 보관한 곳이다. 핵물질 보관 장소를 통해서도 미국이 추구하는 리비아식 핵 해법을 재확인하고 ‘단계별·동시적 보상’이라는 북한의 요구를 일축한 셈이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뿐 아니라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또한 “비핵화는 단순히 핵무기뿐만 아니라 북한이 과거 여러 차례 동의했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포함한다”며 미래의 핵 능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반면 폼페이오 장관은 처음으로 대북 민간투자를 거론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대대적인 경제적 보상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에너지(전력)망 건설과 인프라 발전을 미국이 도와줄 수 있다면서 ‘확실한 당근’을 제시한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폭스뉴스·CBS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북한은 농업 장비와 기술·에너지가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인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으로부터 우리의 기업인과 모험가·자본공급자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이들과 이들이 가져올 자본을 (핵 포기 대가로)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를 이행할 경우 평양에 트럼프 타워가 건설되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진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북한판 마셜플랜’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경제를 부흥하기 위해 대규모 원조를 벌인 마셜플랜과 달리 북한에 대한 직접적 경제 원조(economic aid)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볼턴 보좌관은 CNN방송에서 “나라면 우리로부터 경제 원조는 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에 대한 전망은 한국의 방식대로 ‘정상국가’가 되고 세계 각국과 예의 있는 행실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은 제3국 기업들의 북한 진출 및 투자를 막는 미국의 각종 독자제재를 해제함으로써 북한에 자본과 기술력이 들어갈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미국의 영향력을 활용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의 대북 융자 사업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도울 가능성도 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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