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9월 일간 신문에 스포츠를 통해 사랑을 키운 남녀 체조선수가 화촉을 밝혔다는 짧은 기사가 실렸다. 화제의 주인공은 1964년 도쿄올림픽 남녀 국가대표로 함께 출전한 강수일·최영숙 부부. 이 중 이화여대 재학생이던 최씨에게는 축복이어야 할 결혼이 재앙으로 다가왔다. 결혼 기사를 본 학교 측이 제적을 통보한 것이다. 이대의 악명 높은 금혼(禁婚) 학칙 때문이었다. 최씨는 입학 51년 만인 2016년 칠순을 앞둔 늘그막에 이대 학사모를 썼다.
이대의 금혼 학칙은 원래 여성을 속박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미국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 여사가 이화학당을 세운 구한말 부모의 강요로 조혼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어린 여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화학당 1호 학생도 기혼녀였다. 금혼 학칙은 원래 의미가 퇴색된 채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정으로 비판을 받다 2003년 비로소 폐지됐다.
조혼 풍습은 뿌리가 깊다. 학계는 고려 말 몽골 공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찍 결혼하면서 조혼이 정착된 것으로 추정한다. 옥저의 민며느리제와 고구려의 데릴사위제도 일종의 조혼 풍습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위계승 차원에서 조혼이 성행했다. 삼촌에게 폐위된 단종은 14세 때 국혼을 올렸고 세종대왕은 12세에 혼례를 치렀다. 조혼은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비로소 법률로 금지됐다. 현대에도 조혼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전 세계 18세 미만의 여성 5명 가운데 1명이 조혼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주로 최빈국과 이슬람권에서 매매혼으로 이뤄진다. 예멘의 8세 신부가 40대 신랑과 초야를 치르다 사망한 사건은 조혼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미국에도 고통받는 어린 신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급기야 미국 델라웨어주가 18세 이하의 결혼은 무조건 불법이라는 강력한 조혼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대부분의 주들은 부모 동의와 법원 승인 등 예외적 사유가 있으면 나이와 무관하게 결혼을 인정해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미국의 첫 번째 조혼 금지법이다. 캘리포니아 등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인권단체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사랑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있느냐는 반박이다. 강권에 의한 결혼이 아니라면 일리가 없지 않다. 그래도 미성년딱지를 떼야 하지 않겠나.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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