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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한국경제의 미러클, ‘이젠’ 없다

소득주도성장 1년...일자리 줄고

중기 과도한 지원에 혁신성 저하

경제정책 방향 변화 필요성 커져

대기업 차별는 색깔론도 바꿔야





이철균 경제부장

2016년 11월30일,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이었던 재정경제부의 1~4대 장관(강봉균·이규성·이헌재·진념)이 언론 앞에 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재경회(전직 관료모임)’와 함께 발간하고 있는 ‘코리안 미러클’의 네 번째 책인 ‘외환위기 파고를 넘다’의 발간 기념을 위해서다. 사석이 아닌 공개석상에서, 그것도 외환위기 극복을 주제로 해 함께 모인 만큼 관심은 뜨거웠다. 경제 지표도 나빴거니와 경제 컨트롤타워 부재의 목소리도 컸던 탓이다. 원로들은 역시나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진 전 장관은 “외환위기 당시 경제팀은 대통령과 토론하며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했다. 지금 그런 리더십이 있는지 여러분이 판단해볼 문제”라고 정곡을 찌르기도 했다. 경제정책마저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적고 이행하기에 바빴던, 경제부처 장관들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었다. 실험이 대상으로 전락해서는 안될 경제정책을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관료들마저 비판 없이 따라가기 급급했다는 것이다.

출범 1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기업의 비용 부담을 키우는 소득주도성장이 과연 적합한 정책수단이냐가 골자다. 경제부처 관료들은 여전히 정권의 경제철학의 손발이 되는데 급급하지만 그나마 이전 정부와는 다른 모습도 보인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과 시장·사업주의 수용성을 충분히 고려해 목표 연도를 신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밝힌 것 등이 대표적이다. 밀어 붙였던 소득주도성장이 궤도를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작용한 듯 싶다. 실제 청와대와 정부의 기대와 달리 곤혹스러운 통계 수치들이 잇따라 나왔다. 제조업 가동률은 9년, 산업생산 증가는 5년 만에 가장 나빴다. 물론 기업 실적은 지난해 사상 최고였다. 하지만 전체 산업 영업이익의 25%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의존한 결과다. 소득 분배부터 고용도 최악이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평균 소득을 나눈 값인 1·4분기 5분위 배율은 5.95로 1년 전(5.35)보다 나빠졌다. 5.95배는 200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후 최고치다. 4월 취업자는 12만여명 늘어나는 데 그쳐 3개월 연속 ‘10만명대 증가’를 기록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나쁘다. 경제 곳곳이 멍투성이다.



더욱이 경제정책의 네 축 가운데 하나인 혁신성장 역시 기대 이하다. ‘구름 위에 떠 있는 형국’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정부는 “지난 1년간 혁신성장이 싹을 틔우고 있다”면서 8대 핵심 선도사업으로 오는 2022년까지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진단은 달랐다. 문 대통령은 “경쟁국은 뛰고 있는데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상황이 이렇자 문 대통령은 28일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성장 기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제정책의 방향이 맞는지, 정확한 진단을 위한 긴급 경제상황 점검회의 개최도 예고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정권의 임기가 4년 남은 지금이 경제정책의 키를 돌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 차제에 대기업을 향한 시각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찾은 세계적 경제학자인 로버트 앳킨슨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회장의 발언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앳킨슨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기업 규모가 중요하고 생산성과 일자리 창출 능력도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우수하다. 한국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과도해 혁신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기업을 바라보는 색깔론적 시각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얘기다.
/fusionc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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