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사상 최대 매출이 독이었을까. 2007년 삼성전자에는 이상 신호가 연초부터 감지됐다고 한다. D램·낸드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주가도 폭락했다. 2분기 영업이익은 5년 만의 최저치였다. 대규모 정전 사태도 발생하면서 반도체 공장이 멈춰 섰다. 주력 상품으로 떠오르는 낸드 플래시를 생산하는 라인이 모여 있는 K2 지역이어서 파장이 컸다.
반도체 신화의 주인공인 황창규 사장 등에 대한 문책성 인사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황 사장이 7년간 겸임했던 메모리사업부장을 내려놓은 것인데, 점점 짙어지는 반도체 위기를 진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다. 그해에는 매년 9월 발표하던 ‘황의 법칙’도 늦어졌다.
이런 와중에 열린 ‘선진 제품 비교 전시회’에서는 충격적인 보고가 이뤄졌다. 하이닉스가 D램의 생산성 지표인 수율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당시 채권단 관리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일시적’이라는 꼬리표는 달렸지만 삼성전자가 하이닉스에 뒤처진 것은 D램 수율만이 아니었다. 하이닉스의 D램 출하량은 4억 7000만 개로 삼성(4억 6000만 개)을 넘어섰다. 영업이익률도 18%를 기록하면서 삼성(16% 추정)을 앞질렀다.
반도체 기술은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건희 선대회장은 대로(大怒)했고 삼성은 그룹경영진단팀과 삼성전자 감사팀이 합동으로 반도체 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경영 진단에 착수했다. 삼성의 성공 방정식이 왜 흔들리고 있는지, 그 근본 원인을 찾는 데 주력했다.
재계의 고위 관계자는 “일시적인 실적 부진의 문제를 들춰내겠다는 데 집중한 것이 아니었다. 기술이 추격당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내 본질적인 해법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고 평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이라도 한 듯 2007년의 경영 진단과 인적 쇄신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삼성전자도 상당한 충격을 받을 정도로 2008년 ‘침체의 한파’는 매서웠다. 4분기 9400억 원의 적자도 기록했다. 분기 단위로 실적을 집계한 2000년 1분기 이후 35개 분기 만의 적자였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50%가량 떨어진 여파가 컸다. 반도체 부문의 영업손실률은 14%나 됐다.
선대회장의 호된 질책 후 이어진 일련의 조치들은 삼성에는 뼈아팠지만 결국 약이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삼성이 다시 ‘기술 리더십’을 회복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영업이익이 늘어나면서 2010년에는 화성 반도체 공장에 26조 원을 쏟아붓는 대규모 투자를 했다. 삼성전자의 장기 성장 토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독주하던 삼성전자에 위기의 징후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기간의 높은 실적 증가가 역시 독이었다. 실적에 안주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기술적 부진, 대만의 TSMC와 초미세공정 파운드리 부문의 기술 격차 확대로 귀결됐다. 여기에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 이재용 회장에게 채워진 사법 족쇄가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위기는 인지하지 못할 때가 진짜다. 옆에 와 있다는 것을 알면 진단을 통해 그 해법은 찾을 수 있다. 이미 삼성전자 안팎에서도 수많은 위기에 대한 원인·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사과와 함께 해법 세 가지를 내놓았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수성이 아닌 도전 정신 재무장, 신뢰와 소통 문화의 재건 등이다. 정답이다. 결과는 제대로 된 실행 키를 누를 수 있느냐에 달렸다.
혁신에 실패한 기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천하의 인텔이 AI 대응에 실패하면서 25년 만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지수에서 빠진다. 그 자리를 AI의 상징이 된 엔비디아가 꿰찬다. 기업의 세계는 이렇게 냉혹하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 이후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 중 하나로 꼽혀왔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을 만나 “삼성전자는 좋을 때도 있었고 안 좋을 때도 있었다. 자정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곧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삼성 DNA의 부활을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