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적사항을 획일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당사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아직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고 대체복무 희망 의사를 밝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는 공익과 기본권 침해 정도 등을 고려해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을 것을 31일 병무청장에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진정인 A씨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그는 민간 대체복무를 기꺼이 이행할 의사가 있는 데다 병역법 위반에 관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병무청이 개인정보를 공개한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되며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말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병무청은 법적 절차에 따라 인적사항 등을 적법하게 공개한 것이라고 대응했다.
병역기피자 공개제도는 인적사항 등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병역 기피자가 자진해서 병역을 이행하도록 하고, 향후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병역기피를 예방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현행 병역법에는 병역기피자의 인적사항 등 공개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병역법 시행령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병역의무기피공개심의위원회가 질병, 수감 또는 천재지변 등 사유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운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위원회가 병역의무 기피자를 공개할 실익이 없거나 공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인권위는 병역기피자 공개제도가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대개 병역거부자들이 징역형의 처벌을 받아왔기에 진정인도 처벌을 예상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실형 선고나 인적사항 공개 처분을 받은 후에도 병역거부 입장을 유지하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현행 병역법이 병역기피 예방이라는 목적을 추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우리 헌법과 국제인권규범 등에서 인정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권리로, 인적사항 등을 공개한다고 해서 현재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인적사항 등 공개를 결정할 때 입법목적과 공익성, 당사자 기본권 침해 정도를 합리적으로 고려해 원래 취지에 맞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주환 인턴기자 juj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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