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모기에게 물렸다. 빨갛게 부어오른 자리를 긁으며 이제 여름이 오나 보다, 생각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 튀어나온다는 ‘경칩’이 우수와 춘분 사이에서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듯 그렇게 계절의 변화는 작은 동물들, 꽃과 나무가 먼저 알려온다. 사람이 생각만 빨랐지 뭐가 그리 잘나서 자연의 동반자를 ‘미물’이라 부르는가 반성할 일이다.
낭창거리는 줄기 끝에 붉은 양귀비꽃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신사임당(1504~1551)의 작품으로 소장한 ‘초충도’ 8폭 그림 중 ‘양귀비와 도마뱀’이다. 양귀비의 품새가 어찌나 당당한지 ‘꽃 중의 왕’이라는 모란도 누를 기세다. 양귀비는 불룩한 주머니처럼 생긴 씨방을 맺고 그 안에 좁쌀 같은 씨앗이 가득하기에 ‘다산’을 상징한다. 자식을 많이 나아 번창하라는 기원을 품은 꽃이다. 빨간 양귀비 오른쪽으로 벌써 씨방 하나가 맺혔는데, 제법 묵직해 줄기가 기울었다. 꽃 주변을 날아다니는 나비는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장수’를 뜻한다. 나비 접(蝶) 자의 발음이 중국어의 팔십 노인 ‘질’자와 같기 때문이다. 펄럭거리는 날갯짓에 온몸이 반으로 접히듯 합쳐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하니 부부간의 금슬도 은유한다. 게다가 흰나비다. 흰색을 의미하는 백(白) 자는 으뜸을 뜻한다.
양귀비 허리춤 아래로 붉은 패랭이꽃이 피어올랐다. 패랭이는 줄기 마디마디가 대나무를 닮아서 한자로는 ‘석죽화’라 불린다. 단단한 바위(石)는 장수를, 축하한다는 뜻의 축(祝) 자와 발음이 같은 죽(竹) 자가 들어있으니 두루 좋은 뜻을 가진 꽃이다. 게다가 모래밭에서도 뿌리내려 꽃 피울 만큼 강인하다. 시들시들 늙어도 굽지 않는 패랭이꽃이라 젊음과 장수를 상징한다. 바닥 가까이, 화면의 오른쪽으로 한 무더기 핀 푸른 꽃은 달개비다. ‘닭의장풀’이라고도 불린다. 생명력이 대단한 꽃이다. 게다가 덩굴식물인데, 덩굴은 한자로 ‘만대(蔓帶)’라 하니 자손만대 번창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의 왼편 아래로 야리야리하고 유연한 허리를 과시하는 도마뱀 한 마리가 보인다. 유약해 보이지만 도마뱀은 용을 닮은 동물이다. 용 그림은 왕실에서나 사용하는 것이니 사대부 민가에서는 종종 도마뱀이나 도롱뇽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게다가 도마뱀은 꼬리를 잘라내도 다시 재생하는 힘을 갖고 있는 범상치 않은 동물이다. 이 도마뱀이 지긋이 바라보는 쪽에 검고 커다란 장수하늘소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하늘소처럼 딱딱한 갑옷을 입은 곤충은 ‘갑충(甲蟲)’이라 불렸다. 여기서 ‘갑’은 갑제(甲第)를 뜻하니 과거 시험에서 1등으로 장원급제하고 출세하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그림 한 폭에 이토록 사려 깊은 마음을 담은 신사임당은 식물 한두 종을 가운데 배치하고 그 주변에 작은 동물과 벌레들을 두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초충도’ 양식을 이뤘다. 일상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5만 원권 지폐 앞면에 그려진 가지 그림이다. 보물 제595호로 부산 동아대박물관이 소장한 ‘자수 초충도 병풍’의 8폭 그림 중 하나다. 현재 전하는 신사임당의 그림은 낙관도 서명도 없는 게 대부분이다. 이 자수병풍도 공식적으로는 ‘작자미상’이지만 기법이나 도안의 특징 등으로 볼 때 신사임당의 작품이거나 최소한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가지는 그 형태 때문에 남성 혹은 아들을 상징한다. 가지는 한자로 가자(柯子)라고 하는데 가지 가(柯) 자를 더할 가(加)자로 바꾸면 ‘아들을 더한다’는 뜻이 돼 다산을 나타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초충도’에서는 ‘가지와 방아깨비’가 함께 등장한다. 방아깨비를 비롯한 메뚜기, 여치류의 곤충은 한번에 백 개 가까운 알을 낳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다. 방아깨비 위로는 꿀벌이 날아다니고 아래로는 개미가 줄지어 걸어간다. 여왕벌,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벌과 개미는 군신관계를 은유하니 충(忠)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게다가 두 마리씩 짝지어 등장시킨 것에서 형제간의 돈독한 우애를 바라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수박과 들쥐’의 수박은 덩굴식물의 이름이 뜻하는 자손만대 번영과 촘촘한 씨앗이 상징하는 다산을 함축하고 있다. 게다가 수박은 수복(壽福)으로도 읽기 때문에 그림 속 의미가 남다르다. 잘 익은 수박 속살을 들쥐 두 마리가 파먹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쥐는 부지런히 일해서 부자가 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길쭉한 모양의 오이도 가지처럼 남성성과 아들을 상징한다. ‘오이와 개구리’에서 개구리는 올챙이에서 변태하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게다가 알도 많이 낳는다. 오이 옆으로 고개 숙인 조(粟)가 함께 서 있다. 벼처럼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니 승승장구하더라도 겸손함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맨드라미와 쇠똥벌레’의 주인공 격인 맨드라미는 그 모양이 닭 벼슬을 닮았기 때문에 장원급제해서 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꽃이다. 그 역시 씨앗이 많은 식물이다. 이외에도 사마귀는 수컷이 교미 후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습성 때문에 자손을 위한 부모의 희생을 의미하고, 고추잠자리는 득남을 뜻한다. 이처럼 수십 종의 동식물이 등장하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일일이 언급하기 숨찰 정도로 많은 얘기거리를 품고 있다.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한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1536~1584)의 어머니로 ‘현모양처’의 표상인 인물이다. 어진 어머니, 지혜로운 아내인 동시에 시서화에 두루 능한 예술가였다. 오십을 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지만 4남 3녀를 낳고 키웠으며 그중 큰딸 이매창(1529~1592)은 어머니를 닮아 그림으로 이름을 떨쳤다. 매화를 특히 좋아한 신사임당이 딸 이름 ‘매창(梅窓)’을 직접 지었다고 전한다.
최근에는 현모양처로 ‘포장’된 신사임당에 대한 재평가가 학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생전의 신사임당은 ‘포도와 산수’를 특히 잘 그려 당대 최고 화가인 안견(1410년 경~1464년 이후)에 버금간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신사임당이 요절한 지 100년 쯤 지나 이이의 제자 송시열을 중심으로 그림에 대한 재조명이 진행된다. 기량이 뛰어난 그림과 글씨는 율곡 같은 훌륭한 인물을 “낳았음이 마땅한” 하나의 자료가 됐고 사임당의 그림을 통해 이이를 추앙했고 그를 따르는 학파 전체를 추켜세웠다. 미술사학자 조규희 교수는 논문 ‘만들어진 명작:신사임당과 초충도’에서 “신사임당은 경제적인 이유에서뿐 아니라 남편의 출사와 관련하여 ‘동양신씨’라는 자신의 낙관을 직접 찍은 그림들을 이들(세도가)에게 직간접적으로 선물했을 가능성도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신사임당의 그림이 어떻게 ‘외간 남자’들인 서울의 특권층과 지식인들이 감상하고 소장하고 평가할 수 있었는지 배경을 분석했다. 정치적인 이유가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신사임당의 화첩은 1715년에 궁궐에까지 들어간다. 숙종(재위 1674~1720)은 장인인 경은부원군 김주신을 통해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보게 된다. 화첩에는 그림뿐 아니라 율곡학파를 계승한 노론 핵심 인물들의 발문이 적혀 있었다. 숙종은 그림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탄복하고 율곡 이이의 어머니가 그렸음을 환기시키며 그림을 모사해 병풍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그 안에 적을 시까지 지어주었다. 조규희 교수는 신사임당의 그림에 새로운 문화적 의미가 더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포도와 산수를 잘 그리던” 신사임당은 “포도와 ‘초충도’를 잘 그린 화가”로 평가가 바뀌었다. 근현대로 접어들면서 또 한 번의 ‘재포장’이 진행된다. 이후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한국명화근오백년전’이 열렸고 여기에 개인 소장품인 ‘초충도 10곡병’이 출품돼 주목받았다. 대중에게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알려지는 첫 계기였다. 그런데 이 그림은 전시 이후 권력의 정점인 박정희 대통령의 소유가 됐다. 비슷한 시기인 1975년에 동아대박물관 ‘초충도 자수병풍’이 보물로 지정됐다. 이후 1978년에 박 전 대통령은 이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잘 알려져 있듯 박 전 대통령은 신사임당과 율곡의 탄생지인 오죽헌 보수·관리 등에 지극한 관심을 쏟았고 신사임당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현모양처’가 됐다. 신사임당이 현모양처가 아니었다거나 그의 예술가로서의 기량이 부족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인물에 대한 편견을 걷고 제대로 다시 보자는 청이다.
신사임당의 그림에는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 허투루 보지 않는 따뜻한 시선과 남다른 애정이 담겨 있다. 동식물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에서 동화같은 정겨움이 느껴진다. 세상만물이 더불어 사는 삶임을 깨닫게 한다. 모기에게 내 피 빨아먹으라고 내주는 것까지는 좀 고민해볼 일이지만.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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