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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정영채 NH증권 대표 "손실 두려워 말고 도전, 방향 맞으면 실패도 자산"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이호재기자




자본시장 ‘플랫폼 플레이어’ 꿈꾼다

남들 따라만가면 그저그런 증권사

투자자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꿀 것

“확실히 밀어준다” “사장이 너무 많이 알아서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취임 2개월여를 맞은 정영채(사진) NH투자증권(005940) 대표이사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평가다. 정 대표는 지난 1988년 대우증권 입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특히 투자은행(IB) 부문을 중심으로 30년 경력을 쌓아온 정통 증권맨이다. 대표이사로 승진하기 직전 IB 부문 대표를 맡고 있을 때도 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할 만큼 디테일에 강하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고위 경영진과도 넓고 끈끈한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후배들에게는 ‘든든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상사의 이미지가 강한 이유다.

누구보다 증권업에 훤한 정 대표가 취임 2개월을 넘겼다. 그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문 대표가 아닌 대표이사로서의 목표 지점으로 ‘자본 시장의 플랫폼’을 내세웠다. 정 대표는 “카카오뱅크가 은행 업종을 흔들어놓았듯 아마존과 페이스북도 금융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며 “브랜드·가격경쟁력보다 상품·솔루션·서비스의 경쟁력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NH투자증권은 자본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플랫폼 플레이어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이라는 플랫폼에서는 개인투자자, 기관투자가, 기업 고객 모두가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 대표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고객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무엇을 팔지 고민하기보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해야 한다”며 “그들 스스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니즈까지 찾아내 혁신적인 해법으로 고객들을 감동시켜야 NH투자증권이 선택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 대표는 “고객들에게 ‘금융회사들이 나를 위해 일한다’는 믿음을 안겨줘야 한다”며 “금융투자업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내 회의에서도 “지금 수수료를 얼마 받는지가 아니라 단골 고객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실제로도 정 대표는 지금까지 새로운 시도와 해법으로 시장의 이목을 끌어왔다. 국내 처음으로 미분양 기업구조조정부동산투자회사를 선보인 데 이어 2012년 웅진코웨이 매각에 참여하면서 은행이 아닌 자본 시장 주도의 첫 구조조정 사례에 이름을 남겼다. 또 2013년에는 MBK파트너스가 네파를 인수할 때 자문을 맡으면서 국내 증권사 최초로 인수자 측에 돈을 빌려주는 인수금융 시장에 뛰어들어 성공하기도 했다.

이는 “시장 점유율에 연연하는 그저 그런 증권사로 남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시대의 변화를 좇아 남들 하는 대로 움직이기보다는 NH투자증권이 나서 업계를 혁신하고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정 대표는 “더 나아가 투자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변하게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목표를 향한 첫걸음은 조직개편이다. 정 대표는 지난달 초 취임 이후 첫 조직개편을 통해 IB, 자산관리(WM) 부문 강화에 초점을 맞춘 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IB사업부를 1사업부·2사업부로 확대 재편하면서 사실상 두 배로 늘렸다. 일반 기업을 담당하는 인더스트리본부를 2본부 체제로 확대하고 사모펀드나 금융기관을 전담하는 파이낸셜인더스트리부를 신설했다.

업무 시스템 바꿔야 산다

콜리포트·개인일정공유 정착·확대

일정 중복 막아 부서간 능률 높여

WM 부문은 자산관리전략조직과 지점영업조직을 분리해 영업모델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추진했다. 고객자산운용본부와 전략투자본부를 수익부서화하고 투자심의 수요 급증에 대비해 심사2부를 만들기도 했다. 인수합병(M&A), 대체투자 등 해외 딜 소싱을 강화하기 위해 뉴욕 현지법인에 IB 데스크를 설치하는 등 현지 IB 네트워크 확대에 대한 의지도 밝혔다.

업무 시스템도 변화가 예고돼 있다. 정 대표가 IB 부문에서 정착시킨 ‘콜 리포트(call report)’와 개인 일정 공유체제가 전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콜 리포트는 말단 직원이든, 정 대표 본인이든 회사 외부 사람들과 만나면 관련 내용을 간단한 보고서로 남기는 시스템이다. 언제 누구와 만나 어떤 제안을 했는지, 점심이었는지 저녁 식사였는지 등 사소한 내용들도 기록한 후 공유한다. 이런 식으로 해당 기업·인물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 담당 직원이 바뀌더라도 상대방의 성향과 전략을 파악할 수 있어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2005년 정 대표가 IB 부문 직원들에게 콜 리포트를 처음 제안했을 때만 해도 ‘귀찮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직원들 사이에 ‘유용하다’는 공감대로 바뀌었다.



일정 공유 역시 효율성 제고에 크게 기여해왔다. 정 대표와 직원들 모두 서로의 일정을 공유해 동선이 중복되는 일을 피하고 부서끼리 공조가 필요할 때도 일정을 조율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정 대표 같은 임원은 비서를 거쳐야 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 과정을 없애 직원들이 더 편해졌다. 물론 퇴근 시간이나 개인적 일정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 대표는 “일정 공개는 당초 상하관계를 이용한 조직관리가 목적이 아니었다”며 “최고경영자(CEO), 임직원, 일반 직원들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업 파트너라고 간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체계는 지금까지는 IB사업부만의 문화였지만 현재 다른 사업부로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정 대표 취임 이후 ‘조직문화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변화하는 경영환경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이 TF는 일단 오는 7월 말까지 전사적인 조직문화 개선과 이를 통한 성장방안을 각 부서별로 취합해 검토할 계획이다.

조직의 분위기도 점차 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 대표는 ‘의전’을 기피하는 상사다. 어깨에 힘을 주기보다 직원들과 캐주얼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투자증권 시절까지 포함해 IB 부문 대표직을 10년 넘게 맡았다는 사실을 두고 부하 직원이 “언제까지 IB 대표 할 거냐, 직원들 앞이 안 보인다”고 정 대표의 면전에서 농담을 던질 정도다. 정 대표는 “오히려 쓴소리를 잘하는 사람과 꾸준히 대화해야 한다”며 웃었다.

열심히 뛰어라, 책임은 내가 진다

책임자로 수차례 징계…“내 역할”

성과급 없자 자기몫 직원과 나눠

그러면서도 상사로서의 책임은 철저히 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IB사업부를 이끌어오면서 해외 부동산 프로젝트, 블록딜, 회사채 등의 업무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로서 수차례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뒤로 물러나기보다 책임을 지고 직접 수습에 나서는 식이다. 실제로 손실이 발생해 IB사업부 전체가 성과급을 못 받게 됐을 때 본인의 몫을 포기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기본적 수준의 성과급이 지급되도록 회사와 담판을 지은 적도 있다.

정 대표는 “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사후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직원들을 추스르느냐가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끼리 책임을 전가하다 반목이 일어나고, 결국 영업력에 타격을 주면서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정 대표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 때문에 정 대표가 신임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전까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쟁쟁한 경쟁자들과 함께 이름을 올린 상황에서 내부 직원들의 지지도가 정 대표에 상당수 쏠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직원들이 마음껏, 신나게 시도하기를 바란다”며 “방향만 맞다면 실패도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64년 경북 영천 △1986년 서울대 경영학과 △1988년 대우증권 입사 △1997년 대우증권 자금부장 △2000년 대우증권 IB부장·인수부장 △2001년 증권업협회장 공로상 △2003년 대우증권 기획본부장 △2005년 대우증권 IB 담당 상무 △2005년 우리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 △2013년 기획재정부 장관상-국가경제발전기여 표창장 △2014~2018년 3월 NH투자증권 부사장, IB사업부 대표 △2018년 3월~ NH투자증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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