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미를 뽐내는 ‘머슬퀸’이자 광고 모델, 방송인, 그리고 할리우드 진출을 앞둔 미래의 배우이면서 강사·칼럼니스트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예술·광고기획자) 이연화(27)는 이제 20대 후반인데도 프로필이 A4 용지로 4장에 이른다. 그만큼 다양한 일을 많이도 했다.
이름 앞에 붙는 여러 수식어 중 요즘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을 타는 것은 머슬퀸. 조화로운 근육과 용모를 심사하는 대회인 머슬마니아에서 지난해 아시아 패션모델 부문 1위를 차지하면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연화는 몇 년 전만 해도 운동에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촉망받는 디자이너였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장애를 잊어보려고 시작한 운동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현재 그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11만5,000여명에 이르는 국내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소셜미디어로 유명해진 영향력 있는 개인)다.
제품과 브랜드 등 각종 디자인 작업과 화보 촬영, 강연 등 하루에 소화하는 스케줄만 3~4개일 정도로 눈코 뜰 새 없는 이연화는 그 와중에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골프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 투어 선수 출신인 교습가 김민선씨를 찾아가 골프를 배우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인터뷰한 이연화는 “겉핥기식으로 배우고 말 생각은 없다. 한 달 전 시작했고 일단은 3년을 보고 있는데 얼마가 걸리든 착실하게 배워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시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연화는 말이 조금 느린 편이다. 지난 2015년 봄 이후 그렇게 됐다.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 찾아간 병원에서 그는 청각장애 3급 진단을 받았다. “학교 때부터 밤새워 공모전을 준비하고 공부하고 그랬어요. 식사도 제때 못 하고 건강은 아예 돌보지 못했거든요. 병을 얻고 나니 ‘그때 좀 덜 열심히 살걸’ ‘열심히 산 것에 대한 결과가 이런 건가’ 싶은 거예요. 그냥 다 밉더라고요.” 처음에는 사람들 말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일본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천만다행으로 청력이 30% 돌아왔지만 대신 없던 병 2개가 생겼다. 그는 현재 돌발성 난청, 이명, 이관개방증을 앓는 희귀난치병 환자다. 인공관이 들어 있는 양쪽 귀에 수시로 물약을 넣어야 덜 아프고 먹는 약도 달고 살아야 한다. 6개월에 한 번씩은 수술대에도 올라야 한다. 이연화는 “지금은 듣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몸에서 나는 소리가 아주 작은 것까지 그대로 들려 고통스럽다. 발음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신체적 장애는 우울증으로 옮아갔다. “병을 안 뒤 거의 6개월 동안 집에서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움직이지도 않고 원망만 했어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식습관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결과 비정상적으로 살이 쪄 몸무게가 15㎏이나 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 마침 후배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고 한다. “‘언니가 특별한 사람이라 자기소개서에 남다른 한 줄을 더 쓸 수 있게 하늘에서 선물해준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라는 위로였어요. 그제야 이 순간을 견뎌내면 뭔가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막 솟아오르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연화는 살도 뺄 겸 등록한 피트니스센터에서 죽기 살기로 운동을 했다. 그러다 피트니스 대회가 있다는 소식에 목표의식이 생기자 운동량은 더 늘었다. 근력 운동 3시간에 필라테스, 유산소 운동, 워킹·포즈 연습 등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묵묵히 견뎠다. 마침내 지난해 5월 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세계대회에도 나가 결선까지 진출했다.
스스로 더 짙은 색으로 덧칠했던 그림자를 땀으로 걷어내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머슬퀸으로 방송을 타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광고 모델 제의가 들어왔고 피트니스와 관련한 행사 출연과 강연 요청이 줄을 이었다. 일본 니혼TV 간판 프로그램과 미국 내 1위 여성 채널인 ‘라이프타임’에까지 소개된 이연화는 중국에서 팬 미팅을 진행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일본에서는 그를 ‘피트니스 한류 스타’라고 부른다. 대학 시절 4년 내내 단과대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단과대 학생회장도 지낸 경력 때문에 ‘뇌섹녀(뇌가 섹시한 여자)’로도 조명받는 이연화는 오는 2019년 개봉을 목표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마블 시리즈 공동제작사가 제작을 맡은 공상과학(SF) 장르다. 이연화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얼굴은 아시아인인데 동양인치고는 골격이 되게 크니까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볼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면서 웃었다.
직업란에 한 가지만 적으라면 어쩌겠느냐고 묻자 이연화는 망설임 없이 디자이너라고 했다. “제가 디자이너가 아니었으면 피트니스 대회에서 저를 더 빛나게 하는 방법도 몰랐을 거예요. 지금은 제 인생 자체를 디자인하면서 하루하루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최근 그가 가장 빠져 있는 것은 첫 번째가 골프, 두 번째가 해부학이다. 많은 운동 중 하필 골프인 것은 사실 장애 때문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분주한 운동은 청각 쪽에 쉽게 불편이 느껴져 아무래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골프클럽을 잡고 샷 준비에 들어가면 머리가 비워지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이연화는 “피트니스 대회를 해낸 것처럼 골프로도 두각을 보여 저처럼 아픔을 겪은 분들에게 아파도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해부학은 국군의무사령부가 주관하는 봉사활동에 갔다가 느낀 바가 커 배우게 됐다고 한다. “저처럼 아픈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드리고 싶은데 제가 잘 모르고 얘기한 것들이 어쩌면 잘못된 정보일 수 있겠더라고요. 우리 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최소한 피해는 드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시작했고 흥미롭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연화’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기 바라느냐는 물음에 그는 대번에 “도전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안심할 수 없는 병이라고 늘 상기시켜주거든요. 어쩌면 갑자기 악화할 수도 있다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어떤 것이든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삶이고 싶어 노력했는데 돌아보면 그건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어떤 건지 요즘 매일같이 뚜렷하게 느끼고 있어요.”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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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서울 △2010년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 레드닷 수상 △2013년 경희대 예술학·디자인학 학사 △2013년 MBC퀸 디자이너 오디션 ‘K디자인’ 파이널리스트 △2013년 삼성생명 영라이프 영디자이너 선정 △2013년 삼성전자 갤럭시 기어 콘셉트 디자인 △2015년 디자인 총괄로 칸 광고제 4개 부문 노미네이트 △2017년 이랜드 패션 부문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7년 머슬마니아 아시아 패션모델 그랑프리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 대한민국 사회발전대상 연예방송부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