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원전업계에서는 신한울 3·4호기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탈원전 로드맵에서 신한울 3·4호기도 백지화하기로 한 만큼 언제든 이유를 들어 건설계획 취소를 의결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15일 한수원 이사회는 신한울 3·4호기 백지화는 의결하지 않았다. 이사회는 신한울 3·4호기는 이미 인허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법률적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정계획을 뒤집는데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월성 1호기도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이사회를 열어 폐쇄 결정을 내렸다”며 “신한울 3·4호기 폐쇄 과정에서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수원 노동조합에 따르면 신한울 3·4호기의 매몰비용은 1,628억원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 원전정책은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 계속됐다. 현 집권여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은 2012년 총선 공약으로 2024년까지 원전 14기 추가건설을 명시한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2030년까지 에너지발전량 중 원전 비율을 58%까지 확대키로 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내걸었다. 그럼에도 일부 환경단체를 제외하면 국민적 공감대는 얻지 못했다. 2008년 8월 이명박 정부에서 발표한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2006년 참여정부에서부터 초안이 작성돼 2년간의 치열한 논쟁을 거쳐 발표됐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은 ‘에너지원별, 부문별 등 다른 에너지 관련 계획에 대하여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계획’이라고 명시된 에너지기본계획을 반대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로부터 5년이 지나고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원전 폐쇄 선포식에 참석해 ‘탈원전’을 선언했다. 이어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인 신고리 5·6호기까지 폐쇄하기 위해 공론화 과정을 진행했고 공론화에 참여한 국민들의 반대로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재개로 결정됐다. 공론화 과정에서 논란이 일자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이 아닌 ‘에너지전환 정책’이라며 정책의 이름을 수정해 국민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당시 전문가들은 “앞서 정부가 수립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무시한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로드맵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절차적 타당성의 부재를 지적했다. 원전폐쇄와 관련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권한침해 논란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례적으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원자력정책연대는 지난 1월 에너지전환 정책의 기본 골격을 담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 “전기사업법에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수립절차에 나오는 공청회를 정상적으로 추진하지 않아 공청회가 성립되지 않는 등 정부가 위법하게 확정 공고한 전력수급기본계획 취소를 요구한다”고 서울행정법원에 취소 소송을 접수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정책 수립 과정이 충분한 시간과 토론 없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탈원전 로드맵을 살펴보면 문 대통령이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폐쇄 선포식의 발언이 시발점이 됐고 이후 신규원전 건설 금지라는 탈원전 로드맵이 발표됐다. 이후 법정 계획인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나왔고 올해 말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공개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장 최상위 에너지 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이 발표되기도 전에 하위 계획을 통해 ‘탈원전’이라는 큰 그림이 제시됐다는 점이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뿐만 아니라 13차 천연가스수급계획, 배출권거래와 기후변화 기본계획 등 국가 에너지정책이 올해 결정되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객관적인 토론보다도 이미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답이 이미 정해진 대책이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다.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20년 계획인 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짜맞춰지는 형국”이라며 “에너지정책은 국가산업의 근간이자 동력으로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논의 과정이 지나치게 생략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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