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가 난민 수용 거부를 내용으로 하는 국민청원을 삭제한 것을 계기로 국민청원 게시판의 운영방식을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16일 ‘제주도 난민수용을 거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삭제했다. 청원이 나흘 만에 15만명을 넘는 동참자를 모아 답변 요건인 ‘한 달 내 20만명 참여’에 도달해가고 있는 중에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글을 내렸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청와대의 삭제조치 후에 청원 게시판에는 “국민 의견을 내라고 만들어진 곳이어서 의견을 내고 많은 국민이 참여했는데, 그것을 삭제한다면 이곳을 만든 이유가 뭔가”라면서 “갑자기 왜 지워진 것인지 제대로 설명해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청원의 경우,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성범죄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 청와대의 청원 요건을 보면 △ 욕설 및 비속어를 사용한 청원 △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담은 청원 △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담은 청원 △ 허위사실이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된 청원은 삭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청원 삭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통상, 청와대는 청원 게시판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청원 글을 ‘그때, 그때’ 걸러낸다. 정해놓은 기준이 있지만, 이 역시 추상적이기 때문에 특정 기관이나 담당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 청원인의 입장에서는 삭제의 투명성·절차적 정당성 등에서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삭제되는 모든 청원에 대해 이유를 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문제점에 대해 미리 조치했었어야 하는데, 순식간에 많은 글이 올라오다 보니 대응이 늦은 부분이 있었다”며 “다만 하루에 1,000 건이 올라온다고 치고, 예컨대 100건이 지워진다고 봤을 때 (삭제사유를) 공지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고민을 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청원 게시판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꾸준히 있었다. 지난달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에 허위사실이 포함돼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이 청원에 가수 겸 배우 수지가 동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20만 명에 거의 다다르는 청원인을 모았지만, 범행 장소로 지목된 곳이 사건과 무관하단 점이 추후 확인되기도 했다.
특정 의견이 일부 집단에 의해서 ‘과다대표’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여전하다. ‘목소리 큰 소수’가 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 국민청원 등의 경우에는 온라인 카페 등에 중복 투표 방법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청원 수 부풀리기’ 정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남기기도 했다. 이 밖에도 특정인을 저주하는 인신공격성의 글도 여전히 잇따르고 있다.
다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순기능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민청원’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상 시민의 하소연을 풀어놓을 수 있는 ‘신문고’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은 지난달 청와대 SNS 프로그램인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에서 국민청원 게시판에 관련한 각종 우려에 대해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특히 ‘문제성 청원’들이 국민청원 게시판이 ‘놀이터’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에 “‘놀이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장난스럽고 비현실적 제안도 이 공간에서는 가능하고 국민이 분노를 털어놓을 곳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어 “청원이라는 공론장을 함께 지키고 키워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권혁준인턴기자 hj7790@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