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으로 끝날까, 기적을 만들까.
또 ‘경우의 수’다. 2패를 하고도 경우의 수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패를 안고 오는 27일 오후11시(이하 한국시각) 세계 최강 독일(국제축구연맹 랭킹 1위)을 만난다. 경기 내용이 어쨌건 절대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다. 신태용 감독은 이달 초 출국에 앞서 ‘어차피 3전 전패’라는 일각의 비관론에 “통쾌한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출사표를 던졌으나 결과는 전패 위기다. 부상으로 낙마한 공수의 핵 권창훈(디종)과 김민재(전북)의 공백이 경기를 치를수록 아쉽기만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확률이 실낱 수준이기는 해도 16강 진출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독일과의 F조 최종전에서 2골 차 이상으로 이기면 조 2위로 16강 진출이 가능하다. 같은 시각 멕시코-스웨덴전에서 멕시코가 승리한다는 전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말이다. 이 경우 멕시코는 3승(승점 9), 한국·독일·스웨덴은 모두 1승2패(승점 3)가 돼 골득실을 따져 조 2위를 가리게 된다. 현재 한국의 득실은 -2(1득점 3실점), 독일과 스웨덴은 0(2득점 2실점)이다. 독일을 2골 차로 꺾으면 한국은 득실 0, 독일은 -2가 된다. 멕시코가 이긴다는 가정하에 스웨덴의 득실도 마이너스가 돼 한국이 2위를 차지한다. 승점이 같으면 골득실-다득점순으로 순위를 정하며 이마저 동률이면 해당 팀 간 경기의 승점·골득실·다득점 순으로 따진다. 한국이 독일을 1대0으로만 이겨도 올라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멕시코가 스웨덴을 2골 차 이상으로 크게 이겨줘야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7위인 한국은 24일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멕시코(15위)와의 2차전에서 1대2로 졌다. 장현수(FC도쿄)의 핸드볼 파울로 내준 페널티킥 상황에서 전반 26분 카를로스 벨라(LA FC)에게 선제골을 허용했고 후반 21분 역습 때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웨스트햄)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았다.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이재성(전북)의 도움을 받은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이 중거리 슈팅을 꽂으면서 영패를 면했다.
한국의 경기력은 수비에 무게를 둔 스웨덴전보다 활발했다. 슈팅 수만 봐도 스웨덴전 5개, 이날 17개로 확연히 달랐다. 멕시코(13개)보다 더 많은 슈팅을 시도했다. 1차전에 골문으로 향하는 유효 슈팅이 0개였던 한국은 이날은 6개의 유효 슈팅을 만들어냈다. 손흥민-이재성 투톱에 황희찬(잘츠부르크)을 왼쪽 윙어로 내세운 4-4-2 전술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수비였다. 2경기 연속으로 페널티킥을 헌납했는데 두 장면 모두 어설픈 태클이 화로 이어졌다. 멕시코전에는 측면 크로스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팔을 제어하지 못해 공에 맞았다. 두 번째 실점 때는 물론 주심이 상대의 파울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는 불운이 빌미가 됐지만 최종 수비가 견고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 에르난데스의 속임 동작에 대비하지 못하고 급하게 들어간 태클에 오히려 골문을 열어준 셈이 됐다. 우리가 잘하던 투톱 전술로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남은 기간 흐트러진 수비 조직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다.
독일은 첫 경기에서 멕시코에 0대1로 덜미를 잡히며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자존심을 구겼다. 그러나 24일 스웨덴을 2대1로 누르며 서서히 살아나는 분위기다. 전반에 선제골을 내줬으나 후반 초반 동점에 성공했고 후반 추가시간도 5분이 지난 종료 직전 에이스 토니 크로스(레알 마드리드)가 측면에서 기막힌 프리킥을 꽂았다.
독일이 그대로 비겼다면 한국은 최종전을 치르기도 전에 16강 좌절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며 독일의 승리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는 큰 행운이다. 그러나 동시에 독일의 경기력 회복은 무거운 소식이기도 하다. 월드컵 4회 우승을 자랑하는 독일은 경기를 치를수록 강해지는 팀이다. 크로스는 스웨덴전에서 패스 성공률 93%를 찍었고 1차전에서 부진했던 메주트 외질(아스널) 대신 선발 출전한 마르코 로이스(도르트문트)는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다. F조 2위는 E조 1위가 유력한 브라질을 16강에서 상대해야 한다. F조 1위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독일은 한국전에서 소나기골을 벼르고 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