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경주라고 하면 대부분 불국사와 석굴암을 떠올린다. 실제로 고도 경주는 신라의 유적이 발 닿은 곳마다 이어지는 문화유산의 보고다. 눈길이 자꾸 불국사와 석굴암, 천마총과 첨성대, 그리고 안압지로 향하다 보니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놓쳐왔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주는 자연경관이 장대한 경주 양남면 일대의 동해를 바라보는 언덕길로 향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기온은 30도를 넘었는데 양남면 읍천항 언덕길 데크에 올라서니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게다가 옷은 반팔 티셔츠니 추위를 막을 길이 없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지면서 으슬으슬한 한기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강원도로 취재를 갈 때는 언제나 긴팔 겉옷을 챙겼는데 이번주 출장지는 경북인지라 반팔 옷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차갑고 습했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붙이는 건지, 파도가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건지 파도의 포말은 쉴새 없이 시커먼 주상절리를 덮었다가 걷히기를 반복했다. 용암이 바닷물을 만나 굳으면서 형성된 주상절리가 원래부터 관광자원으로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9년 해안을 지키던 해병대 병력이 철수하고 난 다음 경주시에서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길을 닦고 준비한 결과다.
이때 닦인 길이 바로 하서항과 읍천항을 잇는 파도소리 길이다. 거리는 약 1.75㎞로 예전에는 없던 데크길이 생기면서 걷기도 편해졌다. 데크길 아래로는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된 각양각색의 주상절리들이 파도에 몸을 맡기고 누워 있다. 전망대를 조금 지나 읍천항 쪽으로 가다 보면 주상절리에 흰색 페인트로 동심원을 그려놓은 모습이 보인다. 남손현 해설사에게 유래를 물었더니 “누군가 그려 놓은 낙서인데 요즘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 지역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과녁 삼아 그려 놓은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 얘기가 사실이라면 신생대 제3기 에오세(5,400만년 전)에서 마이오세(460만년 전) 사이에 화산활동으로 생겨나 오랜 세월 훼손 없이 잘 버텨오던 주상절리들은 대명천지 개화된 세상을 만나 봉변을 당한 셈이다. 그 얘기를 듣자 거추장스러워 보이던 데크길이 안온하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데크길과 전망대를 설치하고 난 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숫자는 하루에 최소 1,000명 이상, 주말에는 3,000명을 웃돌고 있다.
남 해설사는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주상절리는 170여곳 정도인데 그들 대부분은 서 있는 형태”라며 “하지만 이곳은 서 있고, 누워 있고, 경사지고, 심지어는 부채꼴 모양까지 있다”고 말했다. 남 해설사는 “부채꼴 모양은 세계적으로 희귀해 국가지질공원의 ‘심벌’로 형상화됐을 정도”라고 자랑했다.
양남면 주상절리의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이유는 동해안이 형성되는 원인과 궤를 같이한다. 지금으로부터 6,000만년 전 우리나라와 일본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인도판이 유라시아대륙과 충돌하면서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됐고 그 힘이 동쪽으로 전달되면서 일본이 떨어져 나가 그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오게 됐다. 그때 불안정한 지각을 뚫고 마그마가 올라와 식으면서 주상절리가 생성된 것이다. 이곳의 바위들이 제주처럼 검은색을 띠는 이유는 화산분출로 생겨난 현무암이기 때문이다.
누워 있는 주상절리의 경우 땅이 벌어진 사이로 용암이 올라오면서 차가운 부분에서 갈라져 식어 들어가 옆으로 누운 주상절리가 됐다. 이렇게 누워있는 주상절리는 ‘누울 와(臥)’자를 써서 와상절리라고도 한다.
경사진 주상절리는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다 굳어진 것이지만 부채꼴 주상절리는 어떻게 형성됐는지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번째는 마그마가 올라오던 분화구였을 것이라는 설이다. 지하에서 용암이 올라오다 식으면서 방사성 모양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둥근 연못으로 용암이 흘러들어 식으면서 방사성 모양이 됐을 것이라는 설이다.
어쨌거나 이 일대는 부채꼴 옆에 기울어진 것, 서 있는 것, 누운 것 등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몰려 있어 학계에서는 한 번의 지진활동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사진(경주)=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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