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엄청나게 더웠던 하루 여행기를 쓰기 위해 대구 인근의 위성도시를 찾았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초행이라 기대가 컸건만 위성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도 고층 아파트와 빌딩만 무정하게 하늘을 찌르고 서 있었다. 빌딩 숲을 여행기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좋은 풍경을 찾느라 8월 염천을 헤매고 다닌 기억에 아직도 몸서리가 난다. 에어컨을 틀어 놓은 차에서 내리려고 문을 여는 순간 밖에서 밀려들어 오던 뜨거운 열기에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끼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워도 소름이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영천시도 대구와 가까운 도시여서 이번에도 그때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첫 번째 취재지 치산폭포(일명 수도폭포)에서 ‘괜한 걱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팔공산 북쪽 사면에 위치한 치산폭포는 산을 경계로 남쪽은 대구, 북쪽은 영천에 속해 있다. 영천시 신녕면으로 접어들자 도로 양편으로 늘어선 울창한 숲이 영천은 삭막한 위성도시가 아님을 설명하고 있었다. 기슭으로 차를 몰아 20분쯤 오르자 치산 저수지가 나왔고 곧이어 수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사는 크지 않은 절이지만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절에 들어서 길을 물었더니 주지 스님이 길은 안 가르쳐 주고 “끼니때 됐는데 식사는 했느냐”고 물어본다. “아직 식전”이라고 대답했더니 “점심 공양부터 하라”고 잡아끌어 요사채로 올라섰다. 갖가지 나물에 밥을 비벼 먹고 나서 떡과 수박까지 곁들였더니 그제야 산길을 차단한 바리케이드의 열쇠를 내어주며 가는 길을 설명해줬다.
수도사를 나와서 계곡을 따라 난 도로로 1.6㎞를 올라가야 치산폭포를 구경할 수 있는데 시청에서 만났던 전민욱 해설사는 “영천시에서 아름다운 풍경 중 한 곳이 바로 치산폭포”라며 “이곳부터 가보라”고 기자에게 일별을 권했다.
폭포 입구 표지판에는 이담로가 치산폭포를 보고 쓴 ‘망폭대(望瀑臺) 차운(次韻·남이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시를 지음)’이라는 시가 적혀 있다. ‘유리 같은 너럭바위에 옥이 흩어져 어지러운 파도를 뒤집으니/ 푸른 하늘에서 흡사 밝은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 누가 이 경치에 빠져 이 대를 만들었나/ 태수의 풍류 한 배(倍)는 많으리라’
전 해설사는 “치산폭포는 팔공산 자락의 폭포 중에 낙차가 크고 수량도 많은 편”이라며 “게다가 3단 폭포에 주변 풍광이 수려해 사진이 잘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주변 숲은 울울창창하고 암반도 수려했지만 아직 장마철이 시작되지 않은 탓에 수량은 빈약했다. 30m 높이의 3단 폭포는 폭도 상당해 비만 와서 수량이 받쳐 준다면 그림이 될 법했다.
“치산폭포를 지나 길을 더 오르면 진불암에서는 크고 작은 연봉이 펼쳐지며 신령재에 올라서면 팔공산의 장쾌한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고 수도사에서 만난 보살 한 분이 등정을 권했지만 일정이 촉박해 하산 길을 택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 1년인 809년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사(海眼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이다. 이후 여러 번의 화재로 중창을 거듭했고 1847년(현종 13)에 또다시 불탄 것을 후에 팔봉(八峰)·해월(海月) 두 승려가 중수했다. 10교구 본사답게 절의 규모가 상당하고 배후의 숲과 진입로에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장쾌하다. 절 안에는 국보 제14호인 거조암영산전(居祖庵靈山殿), 보물 제486호인 백흥암극락전수미단(百興庵極樂殿須彌壇), 보물 제514호인 운부암청동보살좌상(雲浮庵靑銅菩薩坐像), 보물 제790호인 백흥암 극락전 외에 60여점의 문화재가 있다.
영천에 왔다면 들러봐야 할 곳이 임고서원이다. 임고서원은 임고면 양항리에 있는 서원으로 포은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다가 1965년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해 복원했고 2001년에는 황보인의 위패도 배향했다. 경내에는 묘우 표충사, 강당 흥문당, 정몽주신도비, 유물보호각 삼진각, 문루 영광루, 서재 함육재, 동재 수성재 등이 있어 눈길을 끈다. /글·사진(영천)=우현석객원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