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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블랭크파인의 퇴장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1년여 전인 2007년 봄. 월가의 간판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임원회의실에는 리스크관리본부에서 낸 색다른 보고서가 올라왔다. 모기지 파생상품의 부실 가능성을 경고한 내용이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라 누구도 이런 경고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개월 뒤 비슷한 내용의 리포트가 또 올라왔다. 그제야 뭔가 찜찜함을 느낀 로이드 블랭크파인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보유 자산을 전면 재평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보고서의 결론은 매도. 월가의 내로라하는 기관투자가 가운데 부실 폭탄을 가장 먼저 제거한 곳이 골드만삭스다.

월가의 전설이 된 일화는 2013년 개봉된 영화 ‘마진콜’에서 재조명된다. 영화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먼저 알아챈 투자은행이 부실 자산을 단 하루 동안 팔아치워 월가 파국의 전주곡을 울린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영화는 극적 흥미를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과장한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인 모티브는 골드만삭스의 ‘폭탄 돌리기’다.



블랭크파인 회장은 흙수저 출신으로 월가의 황제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뉴욕 빈민가 출신이면서도 명석한 두뇌로 하버드대를 장학금으로 다녔다. 천부적 재능은 그가 다니던 자그마한 원자재 투자회사가 골드만삭스로 넘어가면서 빛을 발했다. 트레이딩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한 끝에 2006년 골드만삭스 회장에 올랐다. 트레이더 출신답게 동물적 감각으로 다가올 위기를 일찌감치 간파했건만 초유의 금융위기라는 퍼펙트스톰까지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시스템 위기 앞에 버틸 장사는 없는 법. 골드만삭스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붕괴로 사망 직전까지 몰렸다가 구제금융을 받고서야 위기의 불길을 끌 수 있었다. 당시 월가 구제금융을 주도한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그에게 골드만삭스 지휘봉을 넘겨준 전임자라는 것이 공교롭다.

골드만삭스는 지난주 플랭크파인 회장이 9월 말 물러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파란만장한 삶처럼 엇갈린다. 골드만삭스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은 주역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회사를 ‘탐욕의 화신’ ‘돈 버는 기계’ 심지어 ‘흡혈 오징어’로 만들었다는 악평도 받는다. 그래도 물러날 때를 아는 것 같다. 그는 직원 서한에서 “회사가 어려울 때는 물러날 수 없고 반대라면 물러나기 싫을 테고… 지금이 적기”라고 했다. 그가 사임하는 9월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 10주년이 된다. 영업실적 발표 직후라지만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 같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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