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오일쇼크가 덮친 1979년 이맘때다. 전기요금이 무서워 선풍기조차 제대로 켜지 못해 부채 하나로만 폭염과 열대야를 견디던 시절이다. 그런데 한 가정집에 한 달 전기료가 18만원 나왔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에어컨도 없던 때라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그해 7월31일자 한 신문은 서울 구로공단 주변 가리봉동의 한 다가구주택에 18만2,000원의 전기요금 고지서가 날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국립대의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요금인데 지금으로 치자면 400만원쯤 된다.
가리봉동 전기요금 폭탄은 당시 요금체제의 모순 탓이었다. 여러 가구가 동거하는 다가구주택이 단독주택인 관계로 계량기가 1개만 설치돼 전기 사용량이 합산된데다 누진 할증요금까지 적용됐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셋방살이하는 다가구주택의 과도한 전기요금이 사회문제가 되자 그제야 한국전력은 1주택 1계량기 정책을 접었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이보다 앞서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 가정용에 한해 도입됐다.
첫 도입 때 요금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3단계 누진제로 최저~최고 요금의 차이가 1.6배에 불과했지만 2차 오일쇼크가 강타한 1979년 12단계로 확대됐다. 요금 차이는 무려 20배로 늘어났다. 누진 요금제는 지금까지 23차례의 조정 끝에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형평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일반 가정이 전체 전력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불과한데도 왜 이 같은 징벌적인 요금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전기요금 폭탄 논란이 거세지자 2016년 6단계·12배이던 누진제를 지금의 3단계·3배로 대폭 낮췄다.
유례없는 폭염과 열대야가 한동안 잠잠하던 누진제 논란에 또다시 불을 붙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에는 누진제 폐지를 촉구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야당에서도 관련 법안을 마련할 태세다. 급기야 수수방관하던 정부도 30일 누진제 재검토를 시사했다. 아무래도 민심이 심상찮다고 판단한 듯하다. 에어컨 팡팡 틀고도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수급이다.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 예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부가 아닌가. ‘국민 발전소’라도 없으면 제2의 블랙아웃이 발생하지 않으라는 법도 없다. 전력수급에 문제없다는 정부의 설명이 미덥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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