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8일 헌법재판소가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에 대한 처벌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서도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내년 말까지 병역법을 개정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헌재의 결정에 대해 “인권에 대한 진일보한 결정”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 우려”라는 엇갈린 평가 속에서 대체복무의 기간, 업무의 종류와 강도 등 구체적 시행방안을 놓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방부는 올해 말까지 대체복무의 복무분야, 합숙 여부, 복무기간, 심사주체, 예비군 대체복무 등 도입방안을 마련하고 병역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개정안이 연내 국회에 제출되더라도 국회 법안심사 과정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와 국회가 어떤 대체복무안을 마련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복무기간 현역의 2배 이상 돼야” vs “1.5배 이상은 징벌 수준”
보수 기독계 등 대체복무제의 병역기피 수단 악용을 우려하는 측은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의 2배 이상이 돼야 하고 영내 합숙을 원칙으로 해야 병역기피 수단으로의 악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북분단이라는 안보상황을 고려하고 국방 의무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 방안 마련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병역회피를 위한 목적으로 대체복무를 선택하기 어렵게 하고 현역병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무분야도 치매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수발과 지뢰제거, 전사자 유해 발굴 등 일반 공익요원의 사회복무제보다 훨씬 어려우면서도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분야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리 감독 주체는 병무청 산하에 대체복무요원선발심사위원회를 두자고 주장한다.
반면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시민단체 등은 “대체복무가 현역병의 1.5배를 넘으면 또 다른 처벌이 될 것이고 국제사회의 기준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체복무의 영역은 치매노인 돌봄,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 의무소방 등 군 통제에서 벗어나 있지만 현역병과 비슷한 강도의 공적 업무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리 감독도 국무총리실이나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산하에 대체복무심의위원회를 두도록 병역법을 개정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또한 제도 도입 초기 1~3년 동안은 신청 가능 인원을 연 1,000명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이렇게 하면 대체복무제가 입영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흐름 된 대체복무…특혜 시각 벗어날 때”
국방부는 “대체복무가 현역보다 어렵고 힘들도록 만들어 이를 쉽게 선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원칙”이라며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 대비 2배 이상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징벌적 수준의 대체복무제를 시사했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는 사유를 불문하고 살상과 전쟁을 거부하는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정의된다. 특정 종교나 교리를 보호하거나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닌 인권 보장 장치의 하나인 것이다.
2015년 유엔자유인권위원회 제4차 한국 정부보고서에서도 유엔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법적으로 인정되도록 하며 병역거부자에게 민간성격의 대체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대체복무제는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 인권보장 장치가 된 지 오래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1949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했다. 대체복무기간과 군복무기간은 동일하게 정했으며 병원, 공공복지분야에서 출퇴근 형식으로 근무하도록 했다. 대만은 2000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으며 군복무기간을 단축하면서 대체복무기간도 줄여 최종적으로 동일한 기간으로 변경됐다. 2018년 모병제로 전환하며 대체복무제도 2021년 폐지될 예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28일 결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관용은 결코 병역의무의 면제와 특혜의 부여에 대한 관용이 아니다. 대체복무제는 병역의무의 일환으로 도입되는 것이고 현역복무와의 형평을 고려하여 최대한 등가성을 가지도록 설계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대체복무제가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으로 떠올랐다는 반증이다. 특혜라는 시각에 사로잡힌 징벌적 대체복무제가 아니라 헌재 결정의 취지를 살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합리적 대체복무안이 나올 때다.
/이정법기자gb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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