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이 중국 첨단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차단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중국 기업투자회사(VC)가 다음 타깃으로 삼은 곳은 유망 스타트업이다. 중국은 올해 5월까지 미국의 유망 스타트업에 24억달러를 투자했다.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졌던 지난 2000년 이후 투자사례는 1,300여건에 이른다. 정보기술(IT)부터 헬스케어·제약·바이오기술·3D프린팅·로봇·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에 집중됐다.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기술획득 등 장기적인 밑그림을 그린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유다. 특히 민간기업은 물론 지방정부 역시 모태펀드를 운용하며 특정 산업에 대한 투자를 공공연하게 유도할 정도로 민관이 합심해 기업 쇼핑에 나서는 분위기도 포착된다.
백여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 대기업에 대한 M&A를 금지하는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해당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지분투자를 하고 있다”며 “특히 지방정부의 모태펀드 출자자로 참여하며 해외 VC들과 함께 펀드를 꾸린 뒤 바이오와 반도체·AI 등 특정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 주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따라 투자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몇년 전까지 1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중국의 AI 스타트업 투자액은 지난해 25억달러(약 2조6,700억원)까지 늘었다. 1위인 미국과의 격차는 15억달러(약 1조6,000억 원) 수준으로 빠르게 좁혀졌다.
대놓고 기술기업을 매입하기도 한다. 전 세계 기술기업 자산 인수를 위해 50억달러(약 5조8,625억원) 규모의 펀드 조성에 나선 중국 VC업체 GSR벤처스가 대표적이다. 이 펀드는 중국 시장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기술·인터넷·생명공학(BT) 산업군에 속한 글로벌 업체 인수에 쓰이기 위해 조성됐다. 지난해 말 닛산자동차는 자동차 리튬이온전지사업 부문과 배터리 생산공장을 ‘GSR캐피털’에 양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 세계 스타트업과 협력해 경영 시너지 효과를 내는 진일보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 대표 유니콘 기업인 브이아이피키드(VIPKID)는 한국 어린이 콘텐츠 기업 스마트스터디와 콘텐츠 공유 및 지식재산권(IP) 협력을 목적으로 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국내 유아 및 초중고교생을 위한 영어교육 콘텐츠를 공동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방침이다.
중국의 한 대기업에서 글로벌 담당 임원으로 일하는 한국인 A씨는 “내수에 기반해 성장한 중국 기업의 입장에서 남는 현금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전 세계 주요 스타트업에 투자해 이들을 협력 파트너로 삼는 것”이라며 “인수가 아니더라도 투자회사와 기술 및 콘텐츠 제휴 등을 통해 자체 경쟁력 제고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중국 기업들이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특허를 매입하는 주도면밀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중국 대표 휴대폰 제조사인 오포는 올해 초 인텔의 미국 특허 포트폴리오 37개를 구입한 데 이어 2월에도 샤프사의 통신 시스템, 모바일데스크 설비, 통신방법 분야 등 미국 특허 총 11건을 구입했다. 5월에는 영국 돌비연구소로부터 음성기술 및 영상기술 특허 240여건을 포함한 특허 포트폴리오 양도계약을 체결했다. 오포 역사상 최대 규모의 특허 매입이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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