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까지 대구의 한 화장품 업체에서 일했던 박모(45)씨는 올 들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그는 현재까지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씨는 “회사로부터 최저임금이 올라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은 직후 실직했다”며 “화장품 회사에서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면서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급여가 생활비에 적잖은 보탬이 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현대자동차 노사는 지난달 ‘기본급 4만5,000원 인상, 성과급 및 격려금 250%+280만원’ 등의 내용을 담은 올해 임금협상안에 최종 합의했다. 수출과 내수 부진 등으로 자동차 관련 협력사들이 고용을 줄이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올해 초 자동차업종 취업자 수는 40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도 현대차 노사의 임금협상안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올 들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격차가 역대 최고로 벌어진 데는 역설적이게도 최저임금 인상 등의 친노동정책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적지 않은 저임금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다 보니 저소득층 가구는 소득이 줄어든 반면 고임금 근로자들은 급등한 최저임금을 지렛대로 삼아 임금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며 소득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노동연구원과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소득 불평등의 추이와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 가운데 가구주가 취업자인 가구의 비중은 전년동기보다 35.4% 줄어든 21.2%에 머물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득 하위 20% 가구의 근로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1% 줄었다. 반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근로소득은 오히려 10.5% 증가했다.
시장소득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하위 20%는 8.5% 줄어든 반면 상위 20%는 12.2% 커졌다. 전체 가구의 시장소득 증가율이 ‘플러스’ 7.7%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층의 소득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고용시장 악화로 일자리를 잃은 많은 이들이 자영업으로 내몰리면서 자영업자의 양극화도 두드러졌다. 소득 하위 20% 자영업자(고용주 및 피용자 없는 자영업자) 가구주의 사업소득은 전년동기 대비 47%나 줄어든 반면 상위 20%의 경우 24.8% 늘어났다.
지난달 시행된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의 소득격차를 더욱 키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경기도의 한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최모씨는 최근 지난달보다 40만원가량 줄어든 급여를 받았다. 휴일수당과 야근수당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우리같이 기본급을 적게 받는 사람은 대부분 휴일·야근수당으로 벌충한다”며 “기본급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벌충마저 못하게 하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서울의 한 버스회사를 다니다 정년퇴직한 뒤 계약직으로 다시 버스를 몰고 있는 양모씨도 “월급이 수십만원 줄었다”며 “당장 생계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반면 포괄임금제가 적용되는 상당수 대기업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임금 감소 등의 손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국내의 한 대형보험사 정규직인 이모씨는 “올 3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범 운영돼 이제 거의 정착단계”라며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임금은 줄지 않아 말 그대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친노동정책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지난 1년간 친노동정책을 편 결과가 취업자 수 증가폭 한자릿수라는 고용 쇼크”라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을 놓고 진정한 친노동정책이냐 아니냐 말들이 많은데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는 친기업정책이 결국 친노동정책”이라고 밝혔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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