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발표한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은 현행을 거의 유지한 형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전형인 정시 비율을 30% 이상 두도록 권고할 계획이지만 실제 늘어나는 정시 인원은 5,000여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입 개편을 1년 미루고 20억여원의 혈세를 들여 공론화까지 추진해 마련한 결과물치고는 졸속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발표한 대입 개편안의 핵심은 ‘정시 수능 위주 전형 30% 이상 확대 권고’다. 교육부는 2020학년도 기준 평균 20% 수준인 정시 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늘리도록 각 대학에 권고하고 이를 재정지원사업인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과 연계하기로 했다. 정시 전형 30% 이상인 대학만 지원사업 참여자격을 부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은 올해 68개 대학에 559억원을 지원했다.
다만 교육부는 지방대 등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의 사정을 감안해 수시 학생부교과전형 비율이 30% 이상인 대학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기로 했다. 또 산업대·전문대·원격대 등 설립목적이 특수한 대학도 권고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렇게 예외로 빠져나가는 대학이 많아지면 ‘정시 확대’는 사실상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상이 되는 전국 198개 4년제 일반대·교대 중 학생부교과전형 비율이 30%를 넘는 대학은 137개(69.2%·2020학년도 기준)에 달한다. 수능 전형이 30% 아래이면서 학생부교과전형도 30%가 되지 않는, 즉 ‘정시 확대 권고 대상’인 대학은 전체의 17.7%(35개)뿐이다. 이들 대학이 정시 비율을 30%로 높일 경우 늘어나는 정시 선발인원은 5,354명이다. 그나마 이 중 상당수가 재정지원사업에 활발히 참여하지 않는 신학대학과 예술대학이어서 실제 늘어나는 정시 인원은 이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정시 비중을 늘리도록 한다지만 수험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서울 내 주요 대학 15곳의 정시 비중은 평균 27.5%(2020학년도 기준)로 권고 비율인 30%와 큰 차이가 없다.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이 응답한 정시 비율의 평균값이었던 39.6%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치여서 교육부가 ‘지나치게 안정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정시 확대는 상위권 일부 대학에만 의미가 있겠지만 그나마도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정시 확대’를 요구한 대학들은 대입 개편안과 관련 없이 정시를 늘렸을 것이어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관심사 중 하나였던 수능 절대평가 과목은 아랍어 쏠림 현상이 나타난 제2외국어·한문 영역만 절대평가로 전환하기로 했다. 수시모집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 활용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다만 지나치게 높은 최저기준을 적용할 경우 대학재정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수능 과목구조도 일부 변경됐다. 국어·수학·직업탐구 영역에서는 ‘공통+선택형’ 구조를 도입했다. 공통과목과 필수선택과목(택1)을 동시에 치르는 방식이다. 탐구 영역에서는 문·이과의 구분을 없애 17개 과목(사회 9개, 과학 8개) 중 계열 구분 없이 2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수능 과목에서 아예 배제될 뻔했던 기하와 과학Ⅱ는 선택과목 형식으로 일단은 포함됐다. 이 밖에 수능 출제 시 EBS와의 연계율은 기존 70%에서 50%로 축소하기로 했다. 또 ‘지문 암기’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출제 방식을 간접연계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번 개편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수험생들의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편안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대학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다. 선택과목의 경우 대학들이 특정 과목을 지정하는 식으로 점수 조정을 유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대입요강이 발표되는 2020년 중순까지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선택과목을 조합한 ‘경우의 수’가 수백 개여서 수험생들의 혼란이 극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심민철 교육부 대학학술정책관은 “대학에 요청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대략적인 요강을 발표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지나친 안정화’를 택한 이번 대입제도 개편안은 어느 쪽의 호응도 얻지 못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등 진보성향의 교육·시민단체들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교육개혁을 포기한 것”이라며 김 부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32개 교육단체가 참여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혁신연대’도 “불완전한 공론화 결과에만 의존해 시도교육감과 대다수 교육단체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수능 전형 확대를 요구해온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공론화에서 정시를 45% 이상으로 확대하는 안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는데 교육부의 개편안은 국민의 뜻을 짓밟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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