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유럽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 벨기에 브뤼셀은 ‘계륵(鷄肋)’과 같은 도시입니다.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여행 일정이 넉넉하지 못 하고 그냥 지나치려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한국에서 벨기에만 콕 집어서 여행을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만큼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브뤼셀을 둘러본 뒤 다른 도시로 떠나는 가성비 갑의 코스를 추천해보겠습니다.
브뤼셀에 대해 한번이라도 검색을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 도시의 ‘센터’는 그랑플라스(광장)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태국 방콕의 여행시발점이 카오산로드인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그랑플라스는 불어로 ‘큰 광장’이란 뜻인데 대부분의 여행가이드북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극찬했다”라고 소개해놓았습니다. 광장을 둘러싼 고딕양식과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충분히 수긍할만한 말이죠.
광장에서 가장 큰 건물은 시청사이고 그 맞은 편에 왕은 살았던 적도 없지만 ‘왕의 집’이라 불리는 시립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방향으로는 과거 상인조합인 길드건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반대편에는 호텔로 사용하는 건물이 있습니다. 그랑플라스에는 왕의집(시립박물관)과 맥주박물관이 있는데 모두 유료입니다. 각국에서 보내준 오줌싸개 동상의 의상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왕의집, 유럽에 흔하디 흔한 양조장 투어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 한 사람이라면 맥주박물관이 볼만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두 곳 다 비추합니다. 시청사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관광객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 스팟이 보입니다. 누워 있는 사람의 청동상인데 관광객들이 팔을 쓰다듬고 사진을 찍습니다. 순교자 세르클라에스의 청동상인데 팔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때문입니다. 행운이 온다니 인증샷을 한번 찍어보고 떠날까요. 유럽에는 이런 전설을 지닌 동상들이 아주 많으니 관광객들이 많다면 그냥 스킵해도 무방합니다.
청동상을 지나 5분 가량 더 걷다 보면 브뤼셀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아주 조롱 받는 유명한 동상 하나가 또 나옵니다. 바로 오줌싸개 동상인데요. 막상 보면 별 것 없는 것 같은데 너무나 유명세를 탄 탓에 조롱을 받는 걸까요. 눈으로 실체를 확인했으면 이제 이동해볼까요. 살짝 출출하다고 느낀다면 와플을 한번 즐겨보세요. 오줌싸개 동상 인근에는 와플 가게가 여러 곳 있습니다. 맛의 차이가 크지는 않고 토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니 토핑에 더 신경을 쓰면 좋습니다. 와플과 음료 하나를 들고 다시 그랑플라스로 돌아온 뒤 시청사 앞 계단에 앉아 여유를 즐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랑플라스에서 브뤼셀 중앙역 방향으로 이동하다보면 예쁜 정원이 보입니다. 예술의 언덕인데요. 인증샷을 찍고 계단을 올라가면 왕립미술관이 나옵니다. 미술관, 박물관은 대체로 추천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곳은 반드시 가야 할 곳으로 강추합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있거든요. 왕립미술관은 올드마스터스, 현대미술관, 르네 마그리트 상설전시관 등 3곳으로 나뉘는데 입장료를 각각 10유로(1만3,000원)씩 받습니다. 이 3곳을 다 갈 수 있는 통합 티켓은 19유로(2만4,500원)에 판매하는데 통합 티켓을 추천합니다.
올드마스터스에는 루벤스, 렘브란트 등 플랑드르 화가들의 명작이 즐비합니다. 가장 유명한 동시에 절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작품은 프랑스대혁명 당시 급진적인 공화정을 추구했던 장 폴 마라가 암살당했던 모습을 그린 ‘마라의 죽음’인데요. 작품을 그린 마라의 친구 자크 루이 다비드는 욕조에서 암살당한 마라를 순교자처럼 표현했고 민중들의 피를 다시 한번 끓게 만들었습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정치 노선과 철학을 두고 혼란을 겪던 상황에서 ‘마라의 순수한 혁명정신을 잘 표현했다’는 의견과 ‘많은 사람들을 반혁명분자라는 명목으로 척살한 마라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게 됩니다. 올드마스터스에는 또 과거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브뤼헐의 ‘이카루스의 추락’ 등 볼만한 작품들이 다수 있습니다. 올드마스터스를 나오면 르네 마그리트 전시관으로 갈 수 있는데 이 역시 강추입니다.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벨기에 출신 마그리트의 작품 전시회는 지난 200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열렸었는데 무려 35만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마그리트전을 감상하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이어질 정도였는데 이곳 브뤼셀에서는 아주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초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왕립미술관을 나오면 인근 브뤼셀 왕궁과 악기박물관이 나오는데 왕궁은 여름철 무료입장으로 공개되는 만큼 한번 다녀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료박물관 중에 최근 많이 알려진 만화센터는 10유로(1만3,000원)의 입장료에 비해 콘텐츠가 심각하게 부실해 비추합니다. 개구장이 스머프, 틴틴의 모험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들의 발상지에서 유래한 박물관이지만 이들 만화와 관련한 기념비적인 전시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정도의 전시관으로 보면 됩니다. 한국인에게는 특히 관심도가 떨어지는 중국만화 특별전이 전체 전시관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전시물의 밀도가 떨어집니다. 물론 스머프, 틴틴을 너무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는 좋은 볼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큰 기대를 하지는 마세요.
저녁이 되면 그랑플라스로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브뤼셀의 유명한 홍합요리를 추천하고 싶은데 적잖은 관광객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한 곳을 향합니다. 바로 셰즈 레옹(Chez Leon)이라는 160년 전통의 레스토랑입니다. 강원도 속초 중앙시장에 수많은 닭강정 가게 속에서 인파들이 만석닭강정으로만 향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결론부터 말합니다. 셰즈 레옹의 맛은 좋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터무니 없어 비추입니다. 1인 기준 홍합요리(프렌치프라이를 포함)와 맥주 1잔을 시킬 경우 30유로(3만8,000원)를 지불해야 합니다. 인근의 다른 가게로 가면 동일한 메뉴를 15유로 가량에 먹을 수 있습니다. 보통 화이트와인을 첨가한 홍합찜을 많이 시키는 데 셰즈 레옹보다 심각하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벨기에의 쇼핑거리는 당연히 초콜릿과 맥주입니다. 초콜릿은 유명한 브랜드 수제제품부터 저렴한 패키지 상품까지 그야말로 다양한데요. 유명한 브랜드점은 노이하우스(Neuhaus), 고디바(Godiva),레오니다스(Leonidas) 등이며 견과류와 크림 등을 초콜릿 안에 넣은 프랄린 초콜릿이 대표상품입니다. 낱개로 다양하게 섞어서 구매할 수 있고 박스에 포장된 형태로 살 수도 있습니다. 세금환급을 받지 않더라도 공항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합니다.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들 역시 질은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초콜릿 10여 개가 들어간 박스 6개 묶음상품이 10유로(1만3,000원) 가량 합니다. 맥주는 그랑플라스 인근에도 맥주판매점들이 다수 있는데 클래식 형태의 상품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레페(Leffe), 호가든(Hoegaarden),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등 국내에 정식으로 들여온 맥주보다는 라 쇼페(La Chouffe), 베뎃(Vedett) 등을 추천합니다. 라 쇼페는 과일향이 풍부한 에일맥주이고 베뎃은 깔끔한 맛이 좋습니다.
/브뤼셀=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