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6품 직위인 정읍 현감을 지내던 한 조선시대 무반이 종4품 직위인 진도 군수 발령을 받자 많은 조정 신료들은 인사에 대해 너무 승진이 빠르다고 반대 의견을 내 그는 부임하지 못했다. 얼마 후 그 무반을 정3품의 전라좌수사에 임명하려 할 때도 많은 신료가 전례가 없는 파격 인사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는 류성룡의 추천과 후보자의 역량을 믿고 승진 임명을 강행했다고 한다. 그 인물은 바로 이순신이다. 많은 논란 속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은 전란의 조짐을 미리 예견하고 강성한 군대 양성에 매진했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수군을 이끌고 연전연승을 거듭해 나라를 구했다. 한국사에서 ‘성웅’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순신 장군의 전공도 탁월한 역량을 알아본 류성룡과 선조의 발탁 인사가 없었다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해외에도 고속 승진한 사례들이 많은데 구글의 최고경영자(CEO)인 순다르 피차이의 사례를 소개한다. 인도에서 태어나 인도의 공과대를 졸업한 후 스탠퍼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지난 2004년에 구글에 입사해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구글 드라이브, 구글 지도 등에 이르기까지 업무범위를 확장해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2013년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까지 맡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입사 11년 만인 2015년에 CEO까지 승진했고 현재까지 구글을 이끌고 있다.
이순신이나 피차이처럼 역량 있는 인재들은 빠르게 승진할 수 있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특정한 사람만이 특별한 연유로 빨리 승진하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는데 과연 그럴까. 역량 있는 사람이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가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닐까. 그런데 행정 현실에서는 인사운영의 안정성을 내세워 이런 원칙이 잘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관련기사
하지만 급변하는 행정 환경에 대응하고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안정성만을 중시할 수 없다. 현재 공직에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사람은 평균적으로 약 25년 정도를 일해야 5급으로 승진할 수 있다. 그러나 하위직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이른바 ‘승진연차’에 갇혀 역량 발휘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속진임용 제도는 이런 승진 관행을 타파하고 역량 있는 공무원에게 그에 맞는 직무를 맡기기 위한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속진임용제를 도입하고 승진심사 절차가 더욱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승진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역량 있는 공무원이 속진임용을 통해 더 중요한 직무를 맡아 좋은 정책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