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특별사절단이 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명확한 ‘비핵화 시간표’를 받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점에서 분명한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의 발표만 보면 북한의 핵리스트 신고와 사찰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이 없어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은 결국 남북 정상회담으로 넘어왔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핵리스트 신고와 종전선언을 둘러싼 북미 간 퍼즐을 맞출 수 있느냐에 회담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에 감사하다. 우리는 (비핵화를) 함께 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인도를 방문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달성을 위해 한 약속을 충족하려면 “할 일이 여전히 산적하다”며 현실론을 펼쳤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6일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미 간 70년의 적대역사를 청산하고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미 대선이 있는 오는 2020년 11월까지의 비핵화는 미국이 계속 요구해왔던 것이고 북한이 이에 응한 셈이어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정 실장의 발표만 보면 비핵화 실천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알맹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현재 미국은 북한이 핵리스트를 신고해야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완강한 입장이어서 특사단이 김 위원장의 양보를 얻어올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그동안 했던 조치들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며 ‘동시 행동 원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게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를 재차 강조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실질적인 핵폐기로 평가하지 않는다. 비핵화를 둘러싸고 북미 간에 쌓여 있는 불신의 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의미다.
결국 북미 간 중재자로 나설 문 대통령의 역할에 모든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정 실장은 이날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지 못한다면 연내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문 대통령에게는 10월부터 석 달밖에 시간이 없다. 미국 중간선거가 11월이고 그 이후 미국의 태도가 돌변할 수 있어 시간은 더 촉박하다.
다만 긍정적인 신호는 분명히 감지된다. 김 대변인은 “특사단 방북 전날인 4일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이 북미 양쪽을 대표하는 협상가, ‘치프 네고시에이터(chief negotiator·수석협상가)’가 돼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며 “이런 배경하에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특사단이 북에 전달했고 또 북의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표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김 대변인은 또한 문 대통령이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대해 “만족해했다”고 말해 이날 공개한 내용 외에 ‘플러스 알파’가 있음을 암시했다.
북한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날 비핵화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조중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들어내고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며 의지”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특사단 방북 일정의 주요 내용도 소개했다. 특사단은 도착 직후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과 면담한 후 오전10시30분부터 12시20분께까지 김 위원장과 협상을 했다. 오찬은 김 부위원장, 리 위원장과 했으며 3시부터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의를 했다. 북쪽에서 저녁을 대접했고 특사단끼리만 저녁을 먹고 귀환했다. 김 위원장과의 만찬은 없었던 셈이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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