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일괄사퇴’라는 초강수를 두며 인적쇄신 작업에 본격 돌입하면서 한국당이 내홍을 겪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특정 계파를 청산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당 안팎에서는 오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친박근혜)’ ‘친홍(친홍준표)’ 당협위원장을 제거하고 ‘친김(친김병준)’ 당협위원장을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갈등은 일괄사퇴 시점인 오는 10월1일을 전후해 고조되기 시작해 재임명 탈락자가 최종 확정되는 연말께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 비대위는 20일 열린 회의에서 전국 253곳의 당협 가운데 위원장이 부재 중인 사고 당협 22곳을 제외한 231곳 당협위원장의 일괄사퇴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부의 반발이 없을 수 없겠지만 당이 비상사태라는 것은 모두 인정할 것”이라며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당협위원장 일괄사퇴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각 당협에 대한 심사·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조강특위는 기존의 당협위원장을 재임명하거나 새로운 인물을 당협위원장으로 발탁한다. 한국당은 당협 재정비를 연내에 마무리할 방침이다. 당초 한국당은 추석 전후로 당무감사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당협위원장 일괄사퇴로 이 같은 계획을 전면 수정해 조강특위 심사로 대신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박덕흠 한국당 의원은 “우리 당헌·당규를 보면 당협위원장을 일괄사퇴시키는 규정은 없다”며 “다만 지방조직운영규정 28조에 따라 시도당 위원장의 의견 청취 후 비대위가 당협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규정의 취지는 문제가 있는 당협위원장을 사퇴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지 일괄사퇴를 허용한 것이 아니다”라며 “일괄사퇴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역 의원들이 지역구의 책임자 격인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결정에 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다가올 총선에서 당의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당협위원장은 ‘배지’를 달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자리인 셈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결국 김 위원장이 새 판을 짜겠다는 것”이라며 “의원들이 당분간은 눈치를 보겠지만 곧 불만을 터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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