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습도를 숫자로 알려주는 화분. 스스로 움직이는 목마. 블루투스로 껐다 켤 수 있는 무드등.
12일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생들이 ‘서울학생메이커괴짜축제’에서 선 보인 작품들이다. 특이한 일부 학생들의 사례가 아니다. 110개 학교 1,500명 학생들이 3차원(3D) 프린터와 3D 펜, 전자 교구를 이용해 만든 자신만의 사물인터넷(IoT)이다.
메이커괴짜축제는 학생 주도 발명 문화를 촉진하고 학생들이 만든 아이디어 발명품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기획한 행사다. 아침부터 축제부스를 준비한 학생들은 이날 지나가는 방문객들을 붙잡고 침을 튀겨가며 자신들의 작품을 홍보하고 나섰다. 방문객들도 3D 프린터로 만든 시각장애인용 지하철노선도에 손을 얹어 보거나 전자장치를 단 목마를 타며 청소년 발명가들의 재치에 흠뻑 빠져들었다.
발명품마다 기능이 훌륭하지만 제작 원리는 간단하다. 3D 프린터로 원하는 물건을 만들고 나면 간단한 컴퓨터 칩을 장착한다. 아두이노 키트나 라즈베리 파이처럼 시중에 파는 체험형 컴퓨터칩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물건은 기본적인 컴퓨터 기능을 할 수 있다. 좀 더 발전시키고 싶다면 추가 기능이 있는 컴퓨터칩과 전선을 사서 연결한 뒤 컴퓨터에 명령어를 넣으면 된다.
서울 인창고 박동철(17)군과 친구들이 만든 ‘습도조절 화분’도 비슷한 원리다. 아두이노 컴퓨터칩과 습도를 측정할 수 있는 칩을 전선으로 연결한 후 센서를 흙 안에 꽂는다. 컴퓨터가 측정한 습도는 전광판에 실시간 숫자로 나타난다. 필요한 전자기기를 구매해 연결하고 간단한 코딩만 해 줬는데도 훌륭한 IoT화분이 탄생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 예산은 한 화분당 4만원 남짓이다.
서울 남대문중학교 박단우(14)군이 만든 블루투스 미니 전광판도 마찬가지다. 체험박스 안에 있는 물품을 활용해 단 3시간 만에 전광판에 원하는 글자를 구현해 냈다. 전선과 전광판, 컴퓨터칩을 이리저리 조립해 만든 결과다. 박군은 “평소 코딩을 많이 하는 편이라 직접 물건을 만드는 활동은 처음이었다”며 “다 같이 모여 기획하고 실습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신기했다”고 했다.
메이커 문화의 가장 큰 장점은 상상한 것을 직접 구현해 보는 경험이다. 이날 세상에 나온 전시작은 모두 학생들이 짧게는 이틀, 길게는 두 달의 시간을 투자해 만든 작품들이다. 전자기기가 아니더라도 목재와 3D펜을 이용해 필통, 반지, 스피커 등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크다. 장종수 서울 월계고 교사는 “과거엔 비전문가가 물건 하나를 만들려면 시행착오가 많이 들었지만 요즘은 체험박스도 잘 나오고 3D 프린터로도 무엇이든 구현할 수 있다”며 “머릿속에 그린 모양을 만든 뒤 컴퓨터칩과 연결하면 그 자체로 작은 사물인터넷이 구현되는 셈”이라고 했다.
다만 입시 부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메이커 교육을 경험하지는 못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메이커 문화 조성을 위해 2022년도까지 예산 100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난해 일선 학교에 3D프린터와 3D펜 500대를 지급했지만 학생들의 이용률은 낮은 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시내 고등학교 교사는 “아무래도 내신성적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정말 관심이 있거나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몰리는 게 사실”이라며 “좀 더 많은 학생들이 발명에 참여하려면 입시 부담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메이커괴짜축제는 오는 13일까지 이틀간 열린다. 서울시교육청은 ‘가족에게 필요한 물품 만들기’ 현장 공모전을 열고 우수한 작품을 만든 학생들도 선정해 시상할 계획이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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