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직지사가 있는 김천이고, 또 다른 한 곳이 청주다. 김천 직지사의 이름은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던 중 절터를 잡을 때 김천 태조산에서 벌판 건너 황악산을 손가락(指)으로 가리키며(直) ‘저기가 내가 찾던 명당’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직지와 엮인 또 다른 도시는 청주로 이곳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절인 흥덕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 전파의 촉매인 금속활자의 고향답게 청주에는 문향(文香)이 흐르고 있다. 그 향기를 따라 발길이 머문 곳은 청주고인쇄박물관 기획전시실. 청주는 지난 2007년부터 세계에서 유일하게 ‘1인 1책 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도시다. 이곳에서 향기가 번져 나오고 있는 것은 올해에 새로 출간된 책자들이 전시되고 있는 까닭이다.
전시실 벽면에는 ‘나만의 소중한 책을 펴내는 일은 일생 쌓아놓은 재산이나 업적보다 값진 기록’이며 ‘인생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가 되어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전시를 담당하고 있는 세계직지문화협회의 임정숙 과장은 “문화센터 등 23곳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6월에 공모를 한다”며 “대상자 선정 후 책을 펴내기까지 1년이 걸리고 그해에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다음 해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청주시에서 선발된 이들에게 지원하는 금액은 1인당 50만원이다. 임 과장은 “자비를 들여서 내는 이들도 있지만 단돈(?) 50만원으로 책을 펴내는 이들도 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했다. 청주시가 이 같은 캠페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홍보되면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개인별 편차는 크지만 전반적인 수준도 높아졌다는 것이 임 과장의 생각이다.
그는 “청주 시민들 중 1년에 적어도 100명은 책을 쓴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며 “12년간 총 1,440권의 책이 출간됐다”고 말했다. 문득 이 팍팍한 세상에 글을 읽고 책을 쓰는 청주 시민의 멘탈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청주가 문화도시가 된 배경에는 직지심체요절이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상·하 두 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하권을 1800년대 말 주한 프랑스공사가 자국으로 가져간 후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했고 1911년 앙리 베베르가 구입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직지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가 한국으로 사진 자료를 가져오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직지에는 “책이 흥덕사에서 인쇄됐다”고 기록돼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흥덕사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러던 1985년 지금의 고인쇄박물관 터에서 흥덕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금불을 발견하면서 마침내 위치를 알게 됐고 1992년 그 자리에 박물관을 짓게 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취재수첩에 주워담은 뒤 청주시 북쪽 미호천(美湖川)으로 향했다. 이곳은 청원구 정북동 일대에 토성이 펼쳐진 곳이다. 축조연대는 알 수 없는 이 토성들이 이른바 정북토성이다.
정북토성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축조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성 안에 주택을 지으며 터를 파는 와중에 돌화살촉과 돌창·돌칼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는데다 성의 위치와 주변 여건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전·중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토성은 남북이 약간 긴 직사각형 꼴이지만 도로 쪽에서 바라보면 그 형태는 가늠할 길이 없다.
성벽의 높이는 2.7~4.5m, 성벽의 윗부분 폭은 2m에 성벽의 밑부분은 12.5~17.5m쯤 되고 길이는 동쪽 185.5m, 서쪽 165m, 남쪽 155m, 북쪽 170m로 모두 합해 675.5m에 달한다.
하지만 해 질 녘 노을에 비치는 정북토성은 역사적·구조적으로 계량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중천의 푸른색에서 지평선의 붉은색으로 번져 가는 석양의 정북토성은 동쪽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성 위에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의 실루엣은 검은색만으로도 찬란하다. 어스름이면 이 모습을 렌즈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는 청주의 명소다. /글·사진(청주)=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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