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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서경클래식 기다리는 오지현] "골프를 즐기라는 말, 이제야 좀 알 것 같아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승 욕심 앞서

쳇바퀴 돌듯 대회출전·훈련만 반복

올들어 스코어 압박감 내려놓으니

안보였던 주변 풍경·사람들 보이고

상금랭킹 1위 등 성적도 뒤따라와

서경클래식은 타이틀 가를 빅매치

올 제주대회서 좋았던 기억 되살려

마지막까지 후회없는 경기 펼칠 것

IQ 143...수학·과학경시대회 1등도

샷 마다 확률·위험도 철저히 계산

무서운 집중력 발휘하는 승부사지만

그린 벗어나면 방탄 좋아하는 20대





“골프 기계가 되지 마라.” “골프 밖의 삶도 돌보기를 바란다.” “행복한 골퍼가 돼라.”

박세리를 비롯해 골프계에 뚜렷한 이름을 새긴 여자 골퍼들이 필드를 떠나며 후배들에게 꼭 이런 말들을 남기고는 했다. 경험에서 우러난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어릴 적 부모에게 이끌려 골프채를 잡고 지독한 훈련과 경쟁 끝에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 사이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은퇴할 무렵 더 크게 보였다는 고백과 함께였다.

시대가 바뀐 때문일까, 대선배들의 조언 덕분일까. 요즘 젊은 선수들에게는 “선수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오지현(22·KB금융그룹)은 골프를 즐기는 법을 잘 아는 선수의 한 명일 것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5년 차에 골프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맞은 오지현을 최근 인천의 한 골프장에서 만났다. 그는 밝은 미소를 곁들여 “대회에 나가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거의 매주 쳇바퀴처럼 대회 출전과 훈련을 반복하는 삶이 행복한 이유는 뭘까. 오지현은 ‘새로움’을 키워드로 꼽았다. “데뷔 첫해만 해도 그저 성적만 바라보고 스코어만 생각하고 대회에 나가고는 했어요. 골프라는 운동이 왜 좋은지도 모를 수밖에 없었고요. 지난해까지도 거의 비슷했는데 5년 차쯤 되니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제법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오지현은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조금 내려놓으니 그전까지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이더라”고 털어놓았다. “골프장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도 마음에 들어오고 대회를 위해, 선수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다음 대회를 가면 또 어떤 새로운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하는 생각들이 솟아나면서 투어 생활이 새롭고 재밌어졌어요.”

골프와 투어 생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오지현은 지난 6월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과거 김미현·강수연·전인지·김효주·박성현이 우승한 최고 권위의 대회다. 8월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도 정상에 오른 오지현은 올 시즌 상금랭킹 1위(약 8억300만원), 대상(MVP) 포인트 2위, 평균 타수 3위(70.09타), 평균 퍼트 1위(라운드당 28.96개) 등 거의 전 부문에서 선두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해피엔딩 이즈 마인.’ 오지현이 골프장 안팎에서 항상 되뇌는 말이다. 영화 속 대사이기도 한 이 말처럼 그는 행복한 결말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오는 25~28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리는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은 막판 스퍼트 무대다. 총상금 8억원 이상의 마지막 ‘빅 팟(Big Pot)’ 대회이기 때문이다. 오지현은 시즌 종료까지 1개 대회를 남기고 제주에서 생애 첫 상금왕 타이틀을 확정할 수도 있다. 오지현은 “매년 조금이나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는 것 같아 타이틀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해도 제게 아주 뜻깊은 한 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타이틀은 세상에 두고두고 기억되는 큰 기록이다.





마침 오지현은 올해 제주에서 강했다. 4월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준우승했고 6월 S-OIL 챔피언십에서는 7위를 했다. 8월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는 2위 그룹인 이정은·최혜진·조윤지를 무려 6타 차로 누르고 우승했다. 오지현은 삼다수대회 우승 당시 “지난 시즌 2승을 거둬 매 시즌 1승에만 그치던 징크스를 깼다. 올 시즌은 3승을 거둬 2승 징크스를 남기지 않겠다”고 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한 시즌 3승 달성을 위한 제주산 멍석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오지현은 “지난해 부상 탓에 서울경제 클래식에 못 나가 아쉬움이 컸다. 핀크스는 처음 경험하는 코스지만 올해 제주 대회가 기분 좋게 잘 풀린 만큼 내심 기대가 된다”며 “바람이 변수인 코스라고 들었는데 그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임하겠다. 이 대회에서 주요 타이틀이 거의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더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힘줘 말했다.

투어 생활을 하면서 들은 최고의 칭찬은 뭘까. 오지현은 “경쟁자이기도 한 동료들의 칭찬이 아무래도 가장 기분 좋다. 지난해보다 골프가 훨씬 발전한 게 보인다는 선배들의 칭찬이 최고의 칭찬”이라고 했다. 골프장 밖에서는 똑똑하다는 말이 가장 반가운 칭찬이라고 하는데 어릴 적 오지현은 전형적인 똑똑한 아이였다. 수학과 과학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는 경시대회 1등도 심심찮게 해봤다. 중학교 때부터 골프에 매진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로도 결정됐지만 한때는 의사를 꿈꿨다. 의사 중에서도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고 싶었다고. 오지현은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심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TV 의학 드라마는 무조건 찾아 보고 또 돌려 본다”고 했다. 중학생 때 측정한 지능지수(IQ)가 143인 그는 샷을 할 때도 확률과 위험도를 계산한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 확률 게임으로 접근한다. 최소 2주에 1권꼴로 책을 즐겨 읽는다는 오지현은 요즘 역사소설에 푹 빠져 있다. “골프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 오히려 골프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전에는 행복해지는 법을 얘기하는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었는데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책 내용과 제 삶을 자꾸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 다르다는 말에 더 공감이 가요.”

오지현은 골프장 밖에서는 또래 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주초에는 어김없이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의 수다를 즐긴다. 스포츠 마케팅에 관심이 많으며 방탄소년단 진·지민의 팬이기도 하다. “친구 같은 부모님과 가정적인 아버지의 영향인지 단란한 가정을 꾸려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장래 소망”이라는 오지현. 가정을 꾸리고 나서도 가능하면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그는 골퍼로는 “꾸준하게 잘 치는 선수, 항상 자기 관리를 잘하는 선수로 기억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이 꿈이기는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고 했다. 충분히 경쟁력이 쌓였을 때 도전하고 싶고 지금은 부족한 점이 다양하게 많아 국내 무대에서 경험하고 배워나가기에도 바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어릴 때는 LPGA 명예의전당 같은 큰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어요. 근데 프로에 들어와 조금씩 경험이 쌓이고 선배 언니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신이 하고 싶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제가 좋아서 하고 있는 일이잖아요. 언제 그만둘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오지현 프로 인터뷰./권욱기자


She is

△1996년 울산 △부산진여고-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재학 △2012년 전국체전 골프 여자일반부 개인전 금메달 △2013년 한국여자오픈 공동 8위(아마추어 1위) △2014년 KLPGA 투어 데뷔 △2015년 ADT캡스 챔피언십서 데뷔 첫 우승 △2017년 평균 퍼트 1위(29.39개) △2018년 상금랭킹 1위(약 8억300만원), 대상(MVP) 포인트 2위, 평균 타수 3위(70.09타) △KLPGA 투어 5년 통산 6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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