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현(22·KB금융그룹)은 자타 공인 ‘악바리’다. 올 시즌 ‘즐기는 골프’를 터득한 것도 그전의 치열한 단련이 뒷받침됐기 때문일 것이다.
오지현의 근성은 철인 3종 경기 선수 출신인 아버지 오충용(52)씨의 피를 물려받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씨는 골프를 전혀 치지 않지만 낯을 가리는 딸을 위해 데뷔 때부터 캐디백을 멨다. 대회 기간에도 틈틈이 훈련 삼아 주변의 산을 뛰어오르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올 시즌 들어서는 딸에게 더 깊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캐디에게 가방을 맡기고 응원에 열중하고 있다. 오지현도 어릴 때 잠깐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했고 대회에 나간 적도 있다.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한 오지현은 스스로 연습용 야구 배트를 하루에 1,000번씩 휘두르며 훈련했다. 손바닥이 찢어질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그는 열여섯이던 지난 2012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됐다. 그해 전국체전에서 고진영 등을 무려 11타 차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냈고 2013년 6월에는 아마추어 추천선수로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해 쟁쟁한 프로 언니들 틈에서 당당히 8위에 올랐다.
정신이 확 드는 실패도 경험해봤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2014년 상금랭킹 64위에 머물렀다. 신인상 포인트 10위에 그칠 만큼 아쉬움이 남는 첫해였지만 다음 시즌 출전권이 걸린 연말 시드전에서 4위에 올라 1부 투어 잔류에 성공한 뒤 매 시즌 성장을 거듭해왔다. 2014시즌은 골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그때 느낀 압박감이 경험이 돼 1부 잔류냐 2부 강등이냐가 걸린 지옥의 시드전은 오히려 마음 편하게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올 시즌 2승은 모두 아픈 몸을 이끌고 이뤄냈다. 한국여자오픈 때는 대회 기간 내내 장염으로 고생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경기에 나갔는데 최소타 기록에 2위를 8타 차로 밀어냈다. 제주 삼다수대회 때는 매트에서 연습하다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샷 할 때마다 통증을 겪었다. 결과는 6타 차 압승. 오지현은 “처음 보는 분들은 악바리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독기라든가 욕심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아프거나 힘들어도 해야겠다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해내고 보는 성격”이라며 웃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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