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가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 ‘반(反)트럼프’ 진영의 대표인사들을 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폭발물 소포’ 배달 사건이 이번 선거에서 가뜩이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 무역분쟁의 여파가 기업 실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 공적으로 삼아온 미국 경기의 앞날이 불안해진데다 기대했던 북핵 문제도 답답한 양상을 보이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승부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터진 이번 사건은 반대파에 대한 거친 공격을 일삼아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잖은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폭발물 소포가 미국 정가 안팎을 발칵 뒤집어놓자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즉각 영향력 차단에 나서며 사건이 몰고 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민주당 출신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의 자택과 뉴욕 맨해튼 타임워너 빌딩에 있는 CNN방송 뉴욕지국 등으로 폭발물이 담긴 소포가 배달된 데 이어 델라웨어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자택 앞으로도 수상한 소포가 배달돼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이 확인에 나섰다고 전했다.
25일 트럼프를 비판해 온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소유한 건물에도 유사한 소포가 배달돼 수거됐다. 지난 22일 민주당 기부자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에게 배달된 폭발물을 합하면 최근 민주당 관련자들에게 총 9건의 폭발물 소포가 배달됐다.
동시다발적으로 배달된 폭발물 소포는 다행히 비밀경호국(SS) 등의 사전 차단으로 피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미치는 폭발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건이 민주당 지지층의 공분을 초래해 반트럼프 세력 결집으로 이어질 경우 중간선거에서 여권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건이 터지자 민주당과 정부 비판적 입장인 언론들은 분열의 원인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며 트럼프 정권에 책임을 묻는 모양새다. 폭발물 소포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았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날 플로리다주의 한 후보자 모금행사에 참석해 “깊은 분열의 시대에 우리는 이 나라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후보자들을 뽑아야 한다”며 분열 대 통합의 프레임을 부각시켰다.
존 브레넌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앞으로 뉴욕지국에 폭발물 소포가 배달돼 긴급대피 소동이 벌어졌던 CNN방송은 “미디어를 ‘국민의 적’이라고 하는 등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한 트럼프를 이번 테러 행위에서 분리하는 것은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이터통신도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뒤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가운데 중간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이번 사건은 여야 간 정치적 주도권 다툼 과정에서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자칫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측이 내세운 분열 대 통합이라는 구도를 막는 데 집중했다.
이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행사에 참석해 “지금은 우리가 단결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통합’에 무게중심을 뒀다. 미 언론들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이번 사건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거칠고 충동적인 언어 사용을 자제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반대파를 향한 전투적인 어조와 레토릭(수사)에서 급선회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자신을 분열의 원인으로 지목한 미 언론들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위스콘신주 모사이니에서 열린 중간선거 지원유세에서 “언론도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끝없는 적대감, 부정적인 거짓 공격(false attacks)을 중단할 책임이 있다”며 분열 조장에는 언론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는 등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