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집권 2년 차가 되면 1기 경제수장들의 끝은 좋지 않았다. 나빠진 경제성적표를 책임이라도 지듯 ‘경질성 교체’가 주를 이뤘다.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을 넘었던 노무현 정부 2년 차는 신용카드 사태와 급증한 가계대출까지 겹쳐 지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결국 이헌재 전 부총리가 소방수로 투입됐다. 이명박 정부도 비슷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 2009년 1·4분기 경제성장률은 -1.9%로 추락했고 고(高)환율 정책이 위기와 맞물려 원·달러 환율은 1,453원대(3월 평균)로 급등했다. 강만수 전 장관이 옷을 벗고 바통은 관료사회에서 ‘다거(大兄·큰형님)’로 불렸던 윤증현 전 장관이 이어받았다. 474(잠재성장률 4%·고용률 70%·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 2년 차는 경제성장률이 3% 초반에 그쳤지만 큰 위기는 없었다. 문제는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률은 9.0%나 됐다. 경제의 활력도 떨어지자 최경환 부총리가 자리를 대신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투자·생산·소비가 모두 꺾였고 환란 후 최악의 고용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정부는 “J커브의 초입에 와 있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고 확신한다. 급기야 기업들은 상반기에만 74억달러를 해외에 투자했다. 지난해 1년치(79억달러)에 육박한다. 경제의 두 축인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의 갈등설은 끊이지 않았고 ‘김&장’ 교체는 이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내정 직후 “경제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비상한 각오로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일성을 날린 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던 김동연 부총리 역시 1기 경제수장의 수난사 굴레를 벗지 못한 셈이다.
교체에 대한 신호를 읽어서였을까. 김동연 부총리의 최근 발언 곳곳에서 ‘탄식’이 묻어난다. 한 포럼장에서는 “부총리가 되기 전에는 대통령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통화한 적도 없었다. 혁신성장을 먼저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이 문재인 정부의 큰 축으로 각인된 후인 지난해 11월에야 혁신주도성장을 공식 테이블에 올린 게 늦었다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혁신·소득주도의 순서만 바꿨어도 이를 둘러싼 논란은 이렇게 크게 전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 때 ‘비전2030’을 만들 정도로 그는 정책 수립의 마스터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봤을 때 정권 초, 청와대 중심으로 경제정책 방향을 만들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 많은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다.
혁신성장을 두고서도 “대기업은 안 되고 중소기업만 도와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불편함이 있다”고도 했다. 국회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의 네이밍과 관련해 저도 이견은 있지만…”이라며 말을 흐렸다. 명칭이 굳어진 지금 어쩔 수 없다는 속내다. 교체설이 재차 부상한 1일 김동연 부총리는 “지금이라도 책임지고 싶은 심정이 왜 없겠느냐”고까지 했다.
김동연 부총리의 사퇴는 이제 시간문제다. 문제는 포스트 김동연이다. 과거 정부의 2기 경제수장들은 한결같이 선이 굵고 관료사회에 대한 장악력이 컸다. 오죽하면 최경환의 경제정책을 두고서는 이례적으로 부총리의 이름을 딴 ‘초이노믹스’로 불렸을까. 그런데 10년 만에 집권한 탓에 2기 경제수장이 될 마땅한 인재가 없다는 얘기가 들린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꿀 의사도 없음을 확인했다.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실행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를 본 장관 출신의 한 인사의 반응은 차가웠다. “읽고 싶고 보고 싶은 일부 숫자에 취해 현실을 제대로 안 보는 것이다. 방향을 바꾸고 최적의 인재를 써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데…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이런 식이면 현재의 ‘김&장’ 체제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뼈 있는 농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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