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다섯 살 딸을 키우는 이모(32)씨는 유치원 입학 시즌을 앞두고 집 근처 유치원으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유치원 정식모집 절차를 진행하기 전에 특별전형 형태로 아이를 입학시켜주겠다는 것. 이미 해당 유치원에 다니는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 우선 입학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특별전형을 적용해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씨의 자녀는 외동이어서 특별전형 대상에 해당되지 않지만 유치원에서는 “다른 원아의 이름을 빌려서 하면 된다. 이미 다 얘기가 돼 있다”며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대신 이씨에게 입학금의 일부를 미리 납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치원 측이 “불법이 아니니 괜찮다”고 했지만 이씨는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아 거절했다.
출산율 저하로 취원 대상 아동 수가 줄면서 운영난을 겪고 있는 사립유치원 중 일부가 입학 시즌을 앞두고 원아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편법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 당국이 권장하는 ‘처음학교로(온라인 입학 시스템)’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립유치원들은 주변 유치원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안정적인 원아 확보를 위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유치원들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특별전형 방식을 편법으로 이용해 원아 선모집을 하고 있다. 이씨의 사례처럼 형제자매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것처럼 위장하거나 차상위계층, 국가유공자, 맞벌이 부부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원아모집 때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식이다. 선입학 ‘담보’를 위해 입학금 전부 또는 일부를 미리 내도록 요구하는 곳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입학설명회에 참여한 학부모에게만 우선 지원자격을 부여하거나 교원단체 등 특정 단체 소속 자녀에게 우선 입학권을 부여하는 곳도 있다.
유치원들은 학부모에게 이 같은 편법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엄연한 지침 위반이다.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는 사립유치원의 경우 원아모집 규정은 개별 원장이 결정하지만 특별전형의 경우 관련 서류를 교육청에 제출해 증빙해야 하고 적발되면 제재를 받는다.
입학금을 미리 요구하거나 전형료를 요구하는 것도 현행법상 금지되고 있다. 유아교육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입학금·수업료는 학기 시작 50일 전부터 받을 수 있다. 입학금은 나눠 낼 수 없고 입학 시 전액을 내도록 돼 있다. 같은 설립자가 세운 유치원으로 전학할 때 입학금을 새로 받는 것도 위법이다.
이처럼 편법이 만연해 있지만 지금까지는 교육당국이 제대로 제재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성실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사립유치원들은 제보가 들어와 감사를 받으면 그 전에 이중장부를 쓰거나 서류를 조작하는 등 미리 준비한 대로 대응한다”며 “학부모 운영위원회나 시민감사단이 감시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각 사립유치원에 보낸 원아모집 관련 지침에서 이 같은 악용 사례를 ‘불공정 사례’로 적시하고 각별한 주의를 요구했다. 교육청은 관련 제보를 취합해 의혹이 불거진 유치원에 대해서는 감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특별전형을 허위로 이용한 경우는 명백한 불공정 사례로 입학 취소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으니 학부모들은 절대 응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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