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이라는 마차는 호박으로 변했다.” (영국 가디언)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가 심각한 폭력사태로 번지면서 유럽의 차세대 지도자로 촉망받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등 ‘프랑스 병’을 수술하기 위해 각종 개혁정책의 드라이브를 걸었던 마크롱 대통령이 성난 국민들의 퇴진 요구에 직면하면서 그가 추진하는 개혁도 성공을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수도 파리의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의 시위현장을 둘러본 뒤 엘리제궁에서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와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 등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폭력시위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추가 폭력사태에 대비해 주요 도시의 경비를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필리프 총리에게는 야당 지도자들 및 노란 조끼 대표단과 회동해 해법을 모색할 것을 주문했다. 이날 ‘유럽1’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뱅자맹 그리보 정부 대변인은 최악의 폭력사태를 초래하고 있는 시위를 막기 위해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며 최악의 경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프랑스 대통령의 비상지휘 권한은 지난 2015년 11월 발생한 테러공격 이후 확대된 상태다.
1일의 시위로 파리 중심부는 아비규환에 빠졌다. 샹젤리제와 에투알 개선문 등 파리 최대 번화가에서 막대기와 도끼 등으로 무장한 시위대는 차량과 건물에 불을 지르고 상점 진열창을 깨부쉈다. 샹젤리제 거리의 고급상점 안 물건들까지 약탈한 사례도 나타났다. 파리의 상징인 개선문에는 ‘노란 조끼가 승리할 것’ ’부르주아 타도’ ‘마크롱 퇴진’ 등의 낙서가 등장했다. 이날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로 파리에서만도 412명이 체포되고 133명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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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내무부가 발표한 프랑스 내 시위 참가자 수는 3만6,000여명으로 시위 시작 이후 첫 주말인 지난달 17일 11만3,000여명, 24일 5만3,000명보다 줄었지만 외신들은 시위가 격화한 것은 물론 당초 유류세 인상 반대로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가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어젠다 전체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시위대는 부유세 철폐와 주택보조금 삭감, 초과근무수당 삭감 등 각종 노동유연화 정책과 조세 정책을 펴는 마크롱에 대해 ‘부자들의 대통령’이라고 혐오감을 내비치며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인 실업률과 유류세 인상 등으로 부각된 조세부담으로 마크롱표 개혁에 대한 실망이 고조되면서 노란 조끼 시위가 1968년 5월 이후 50년 만에 최악의 폭력사태로 비화했다는 것이다.
성난 여론을 등에 업은 야당은 국회 해산을 요구하고 나섰다. NYT는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당수와 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새로 시행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영국 워릭대의 짐 실즈 프랑스정치학 교수는 “노란 조끼 시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지겠지만 그 아래에서 흐르는 분노는 새로운 형태를 띠며 계속 마크롱 대통령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이나 실업급여 삭감같이 논란이 많은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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