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종이 한 장에 제 인생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라도 가능하다면 연락을 주세요.”
올해 나이로 구순, 한국맥도날드의 최고령 크루로 꼽히는 임갑지씨가 지난 2003년 맥도날드의 시니어 크루 채용에 지원하며 처음 건넨 말이다. 임씨는 농협에서 55세까지 근무하다 정년 퇴임한 후에도 축산업과 가족 사업 등을 하며 꾸준히 일했다. 75세가 되던 무렵에야 마침내 모든 일을 정리하고 은퇴했지만 그가 쉰 시간은 고작 6개월. 그는 “6개월쯤 쉬니 그 시간이 무료하게 느껴졌다”며 “아직 더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찾은 서울시 직업박람회에서 그는 한국맥도날드의 시니어 크루 채용을 알게 됐다. 원래 직업적 경험을 살려 예식장 주례 업무나 금융권 채권관리 등을 하려고 찾은 자리였지만 맥도날드의 일이 좀 더 흥미로웠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곧장 자신의 인생이 담긴 지원서를 썼고 일주일 뒤 채용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16년. 임씨는 매주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4회, 오전9시부터 오후1시30분까지 맥도날드 서울 미아점에서 근무한다. 이곳에서 그의 업무는 매장에서 손님들이 식사하는 공간인 ‘라비’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이다. 많이 걷고 많이 움직이는 육체적인 일에 가깝다. 힘들 법도 하지만 지각이나 무단결근을 한 적은 16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운동이 돼 더 좋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임씨는 “하루는 만보기를 차고 근무해봤는데 네 시간 동안 1만보를 너끈히 걸었다”며 “저절로 전신운동이 되고 있어 지난해 건강검진에서는 심혈관 및 신체 나이가 65세로 나왔다”며 웃었다.
그는 대체로 나이가 어린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동료들은 임씨를 ‘할아버지’나 ‘아버님’ 등 친근한 호칭으로 부른다. 때때로 삶을 먼저 산 선배로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는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때로는 지극히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열심을 다하면 훗날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을 해주고는 한다”며 “평범한 말처럼 들릴지라도 모든 행동과 마음이 결국 자신을 이루는 자산이 된다는 것은 삶의 진리”라고 말했다.
4일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맥도날드 서울 미아점 식구들과 함께 생일 파티를 했다. 2008년까지 같은 매장에서 동일한 시니어 크루로 함께 일한 아내 최정례(78)씨와 조주연 한국맥도날드 사장까지 참석해 노고를 치하한 이 자리에서 그는 시종일관 “별일도 아닌데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겸손했다. 임씨는 “구십 평생 오늘같이 축하받고 대접받는 일은 처음”이라며 “축하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며 (축하가 마무리됐으니) 이제 다시 일하러 가야겠다”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맥도날드에서는 임씨와 같은 시니어 크루 3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나이·성별·학력·장애 등에 차별 없는 ‘열린 채용’을 지향하며 어르신이나 경력단절 주부, 장애인 등 소외 계층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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