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의혹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는 사법부가 이르면 이달 12일 마련될 법원 자체 개혁안으로 또 다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부 인사 중심의 사법개혁 후속추진단에 성급히 개혁 실무를 맡겼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뒤늦게 ‘셀프 개혁’으로 선회한 듯 반대 입장을 수렴하고 있어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후폭풍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법원 자체 진상조사부터 검찰 수사까지 끊임없이 비판 대상이 된 김 대법원장의 우유부단 리더십이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이르면 오는 12일 자체 사법개혁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법원은 당초 이달 20일 최종 개혁안을 국회에 낼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나치게 늦다”고 지적하자 일정을 앞당겼다. 당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12월12일까지 법원 입장을 가능한 정리하겠다”고 의원 질의에 답했다.
이 때문에 법원은 기존에 진행하던 의견수렴 절차에도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일 대법원에서 판사들과 법원 공무원이 모두 참여하는 토론회를 연 데 이어 이달 5~12일 실시 예정이던 법관 설문조사 일정을 돌연 4~10일로 당겼다. 지난 7일에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에서 전국 법원장 39명이 모여 사법행정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법원은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대법관회의를 거쳐 최종 개혁안을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상당수 법조인들은 법원이 어떤 식으로 최종 결론을 내더라도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김 대법원장의 오락가락 행보가 또다시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김 대법원장은 앞선 9월20일 ‘사법개혁 대(對)국민 담화문’을 통해 외부 법률 전문가 4인과 법관 3인으로 구성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을 구성해 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이행했다. 그는 나아가 “사법부 개혁조치를 위해 입법부, 행정부, 외부 단체가 참여하는 보다 큰 민주적 개혁기구 구성 방안도 조만간 마련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펼쳤다. 외부 인사가 더 많은 조직 구성상 후속추진단이 법원 내부 생각보다 급진적 개혁 방안을 내놓을 것쯤은 빤히 예상되는 바였다.
김 대법원장은 그러나 지난달 6일 후속추진단이 정작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내놓자 “법원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사법부 외부에서 “문제기관인 법원행정처가 ‘셀프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을 쏟아낼 때는 의견수렴도 없이 서둘러 대국민 발표를 해 놓고 막상 개혁 시기가 되자 사법부 조직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후속추진단은 대법원장의 권한을 법원 외부인사가 절반 정도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로 대폭 이양하는 안을 제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 후속추진단장인 김수정 변호사는 지난달 22일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후속추진단이 시간과 기회를 다 보낸 지금 왜 원점과 같은 수준에서 법원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김 대법원장을 공개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의견수렴 절차를 밟겠다는 것은 반대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의지”라며 “최종적으로 사법발전위원회 다수의견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이는 개혁의 후퇴”라고 주장했다. 민변 역시 “현재 대법원이 진행하는 법원행정처 폐지 등은 법원 ‘행정’의 개혁일 뿐”이라며 “각계가 참여하는 범정부적인 사법개혁 추진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의견수렴 과정에서 후속추진단 안에 반발하는 법관들의 주장은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3일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민기 부산고법 고법판사는 “사법행정회의에 각급 기관장에 대한 임명·지휘권을 전부 이관하는 것은 현재 대법원장이 이를 독점한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사법행정회의의 역할을 의사결정 기구로 명확히 하고 인적 구성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7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후속추진단이 제안한 사법행정회의 권한에 비판적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법원장들은 사법행정회의를 자문기구로만 남기는 안, 중요사항에 관한 심의·의결기구로 존재시키는 안, 포괄적 심의·의결기구로 만드는 안 등을 제시했다. 대부분 후속추진단이 내놓은 개혁안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심지어 일부 법원장은 “사법행정회의 존재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후속추진단 의견을 그대로 존중하든, 대폭 수정하든 법원 안팎의 내홍이 점점 더 심화될 것임이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김 대법원장이 우유부단한 리더십으로 법원 안팎의 내홍을 초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대법원장은 재판거래 의혹 검찰 수사 직전인 6월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법원행정처는 정작 각종 자료 임의제출 요구를 잇따라 거부했다. 9월 사법부 70주년 행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공표했지만 일선 법원의 영장 기각은 멈추지 않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이 계속해서 표리부동한 태도를 취하면서 사법부가 어떤 개혁안을 내놓아도 법원 안팎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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