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을 들여 개발한 에어컨 핵심기술을 이동식저장장치(USB)에 통째로 담아 유출한 연구원들이 검찰에 붙잡혀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이 연구원은 이직하면서 핵심 기술까지 무더기로 빼돌리는 등 10년간 일해온 ‘친정 회사’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개발 과정에서 수백억원을 쏟은 토털에어컨디셔너(TAC) 등 ‘알짜 기술’이 USB와 외장 하드에 담겨 쉽게 유출된데다 상대 기업 신제품 개발에까지 쓰인 의혹을 받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보안·직업 윤리 의식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법조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과학기술범죄수사부(조용한 부장검사)는 국내 보일러업체인 경동나비엔의 연구원 강모씨를 절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 17일 구속 기소했다. 또 강씨보다 앞서 회사를 옮기면서 설계도면 등을 빼돌린 같은 회사 연구원 김모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경동나비엔도 이 같은 사태를 미리 막지 못한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입건됐다.
강씨는 올해 6월 대유위니아를 퇴사하는 과정에서 에어컨·김치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3D도면 등 주요 핵심 기술 자료를 USB·외장 하드 등을 통해 무단으로 반출한 뒤 이직한 경동나비엔으로 가져간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주요 설계도면 등을 빼내 경동나비엔의 신제품 개발에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피해 금액만 수백억원으로 추산되는 이번 기술 유출 사건의 시작은 한 건의 진정이었다. 대유위니아는 ‘본사에서 재직하다가 경동나비엔으로 이직한 연구원 강씨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의혹이 있다’며 진정을 제기했고 검찰은 올 10월 경동나비엔을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검찰은 강씨는 물론 그보다 1년가량 먼저 경동나비엔으로 이직한 또 다른 연구원 김씨의 기술 유출 및 신제품 개발 활용 정황까지 포착했다. 게다가 수사가 시작되자 강씨 등이 컴퓨터를 포맷해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한 것도 확인했다. 검찰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서 포맷된 컴퓨터에 대한 정말 분석 등 지원을 받아 핵심 기술이 대유위니아에서 유출돼 경동나비엔의 신제품 개발 등에 쓰인 정황을 확인하고 결국 연구원들을 재판에 넘겼다.
대유위니아 측은 “민감한 사안인데다 재판도 앞두고 있어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말을 아꼈다. 경동나비엔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해당 직원이 유출했다는 기술이 제품에 전혀 적용된 바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경력 입사 때 이전 회사의 영업비밀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매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등 영업비밀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앞으로 관련 절차에 따라 성실히 소명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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