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택 거주자들에게 고시원과 쪽방촌은 살아갈 집이 아니라 죽어서 들어갈 관(棺)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화재로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일고시원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성탄 예배가 열린 25일 참석자들은 안전대책을 넘어 비주택 거주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성공회와 나눔의집협의회 등은 이날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서 ‘우리는 고시원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성탄 예배를 개최했다. 이날 예배에는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성공회 신자와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 생존자를 비롯해 시민 100여명이 참석했다.
여재훈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전용숙소로 자리 잡은 고시원은 대도시 구석구석에 인력을 제공하는 기숙사 역할을 하고 있고 이들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커다란 도시의 밑바닥이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여 신부는 이어 “가난한 이들의 주거공간인 고시원에서 숨진 이들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죽음에 내몰리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숨진 일곱 분의 평화로운 안식과 함께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는 이웃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드린다”고 덧붙였다.
홈리스추모제 기획단 소속의 이동현 활동가는 “2004년 4,000개이던 고시원이 지금은 1만2,000개로 세 배가량 늘었다”면서 “열악한 곳에 삶을 욱여넣도록 용인해온 작금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서울시는 생존자 31명에게 거주비 및 생계비를 두 차례 지원했다. 상당수의 생존자는 경제적 비용 등을 이유로 다시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생존자 조모씨는 “화재 트라우마로 하루에 잠을 한 시간밖에 자지 못해 직장에서도 권고사직을 당했다”며 “앞으로 가족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앞이 깜깜하다”고 토로했다.
참석자들은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통해 안전한 주거공간을 보장받지 못한 비주택 거주자들을 떠올리며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향상과 안전한 주거권 마련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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