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경순찰대에 구금된 이민자 아동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장기화를 불사하겠다며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하원 다수당 지위를 차지한 민주당은 불법이민자 수용시설의 취약성을 비판하며 트럼프 정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어 이민자 문제를 둘러싼 미 정가의 ‘강 대 강’ 대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5일(현지시간)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미 국경순찰대에 구금된 과테말라 출신의 8세 소년이 감기와 고열 증세를 보이다 성탄절인 이날 새벽 숨졌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8일 과테말라 출신인 7세 소녀도 미 국경 억류 도중 탈수증과 쇼크 증세로 사망하는 등 이달에만도 국경지대에서 아동 2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맞았다. 이날 숨진 소년은 18일 아버지와 함께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를 통해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다 국경순찰대에 의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은 불법이민자 아동들의 사망 원인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이들이 어른도 참기 힘든 차가운 바닥에서 72시간 이상 적절한 치료 없이 구금된 것이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 단위 이민자 행렬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여서 취약한 수용시설 문제는 더욱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국경수비대에 따르면 아이들을 동반해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된 이민자 수는 10월과 11월 두달간 4만8,287명에 달한다. 11월에만도 2만5,172명이 체포됐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체포된 인원(7,016명) 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장벽 건설 예산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셧다운은 계속될 것이라며 연방정부 기능을 담보로 한 국경장벽 건설 강행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바레인·카타르 등 국외에서 복무하는 미군 장병들과 통화한 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연방정부가 언제 문을 열지는 말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장벽을 갖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차기 의회가 열리면) 아마 대통령을 괴롭힐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안다”며 민주당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의회전문 매체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크리스마스 연휴를 마치고 의회가 다시 열리더라도 지금의 교착국면이 조속히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보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강경 입장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문제로 촉발된 셧다운 상황에서 발생한 소년의 사망 소식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며 민주당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의 톰 유덜 상원의원(뉴멕시코주)은 소년이 사망했다는 소식과 관련해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가족 혹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에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게다가 셧다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연방정부 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트럼프 행정부에는 불리한 점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셧다운은 관광객의 불편을 초래할 뿐 아니라 당장 수많은 연방정부 직원들을 일시해고 상태로 만든다”면서 “셧다운이 28일 이후로 장기화하면 국토안보부 산하 해안경비대 인력에 대한 급료 지급도 중단된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26일 연방정부 업무가 재개되면 전체 연방 공무원 210만명 가운데 38만명이 일시해고 상태에 처하게 된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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