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삼청교육대’ 설치의 근거가 된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포고가 위헌·위법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 판단을 바탕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가 무단 이탈했다는 이유로 계엄법 위반죄로 징역형을 확정받은 과거사 피해자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8일 계엄법 위반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A씨가 낸 재심청구 재항고심에서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는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계엄포고는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이후 동요 우려가 있는 시민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며 발령 당시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이 옛 계엄법 제13조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할 때’에 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엄포고의 내용도 국민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고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난동, 소요 등 불법행동을 일체 금한다’는 부분은 내용이 추상적이고 모호할 뿐만 아니라 적용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A씨는 1980년 8월4일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이 내린 계엄포고 13호에 따라 불량배로 지목돼 검거됐다. 해당 계엄포고는 폭력사범, 공갈·사기사범, 사회풍토 문란 사범을 검거한 후 일정 기준에 따라 분류·수용한 뒤 순화교육과 근로봉사 등으로 순화시켜 사회에 복귀하게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삼청교육대에 수용돼 근로봉사대원으로 폐자재를 운반하던 A씨는 작업 장소를 결국 탈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81년 징역 10개월을 확정받았다.
시간이 흐른 뒤 A씨는 2015년 12월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필요 서류가 첨부되지 않았다”며 기각당했다. 이후 A씨는 부산지법 항고부에 항고했고 항고심은 “계엄포고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된 데다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하고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무효”라며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검찰은 이에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원심과 같았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로 긴급조치 1호를 위헌·무효라고 선언한 이래 긴급조치 9호, 긴급조치 4호, 부마민주항쟁 관련 계엄포고 1호 등에 대해 잇따라 위헌·무효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박정희 정부가 유신체제 선포를 위해 발령한 ‘비상계엄 포고령 제1호’를 처음으로 무효 판단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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