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에 있는 돼지저금통 전문생산업체 성도테크 공장. 기계 제형 틀에 따라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황금색 돼지저금통이 두 개씩 찍혀 나왔다. 민낯의 돼지저금통이 옆 공장으로 옮겨지면 직원들이 재빠르게 눈·코 등 스티커를 붙였다. 돼지 옆구리에는 기업 홍보문구도 새겼다.
2019년 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요즘 성도테크 공장은 24시간 가동 중이다. 공장 마당에는 완성된 황금빛 돼지저금통들이 상자에 가득 담겨 쌓여 있다. 저금통 제작회사로서는 12년 만에 돌아온 그야말로 ‘돼지 특수’다. 김종화 성도테크 대표는 “돼지저금통에 대한 수요가 예전보다 줄기는 했지만 돼지해를 맞아 집에도 못 가고 공장에서 먹고 자며 돼지저금통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에서 돼지는 행운과 재복의 상징이다. 저금통의 대표 얼굴로 돼지가 오랜 기간 자리매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황금돼지’의 해로 돼지저금통 업계도 덩달아 활기를 띠고 있다. 성도테크도 요즘 하루에 돼지저금통 4만개를 생산하고 있다. 주요 고객은 카드사·보험사·자동차회사·공공기관 등으로 판촉물용으로 제작된다.
20년 넘게 돼지저금통을 만들면서 여러 차례 위기도 극복했다. 회사의 첫 작품 ‘투명한 돼지저금통’을 만든 게 IMF 외환위기 조짐이 보이던 1996년이었다. 당시 회사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선금도 받지 않고 투명한 돼지저금통을 판매하게 했다. 3,000원짜리 돼지저금통 하나를 팔면 판매자들에게 700원의 이익이 돌아갔다. 김 대표는 “투명 저금통의 인기와 외환위기로 동전 하나라도 절약하며 저축하는 분위기가 맞물려 당시 저금통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며 “저금통 덕에 실업자들도, 회사도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이어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나온 큰 돼지저금통이 유행하면서 돼지저금통 시장은 또 한번의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최근 불어닥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경기불황 앞에서 ‘돼지저금통’ 업체도 고민에 빠졌다. 김 대표는 “300원(공장도가격 기준)짜리 돼지저금통 하나 팔아야 50원이 남는다”며 “판촉물 생산을 의뢰하는 고객사도 이전 돼지해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라고 털어놓았다. 카드 사용으로 동전 사용량이 줄고 저축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는 일은 낯선 장면이 된 것이다. 성도테크도 한때 대형 저금통 제작기계 6개를 운영했지만 이제 1개만 남았다. 김 대표는 “12년 전만 해도 돼지저금통을 실어 나르기 위해 트럭들이 공장 근처 길목을 가득 메웠고 하루에 돼지저금통을 20만개나 찍어냈다”며 “돼지저금통을 만드는 마지막 돼지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올해는 황금돼지의 복된 기운을 믿고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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