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법관 사찰 등 사법농단 의혹의 최고 윗선으로 꼽히는 양승태(71·사진)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출석한다. 검찰 사정의 칼날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등을 거쳐 최고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까지 겨누고 있는 터라 사법농단 수사가 정점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오는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한다고 4일 밝혔다. 전현직 대법원장 가운데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양 전 대법원장이 헌정 사상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1년 9월부터 6년간 사법부 수장을 지낸 인물이다. 임 전 차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에게 재판거래와 같은 반헌법적 구상이 담긴 문건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지난해 6월18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고발 사건 10여개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재배당하며 사법부 상대 수사를 본격 시작했다. 7개월 만에 사실상 모든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출석을 통보함에 따라 수사가 정점을 찍게 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재판거래는 물론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까지 폭넓게 조사할 계획이다. 이날 검찰 고위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두 차례 이상 소환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점도 그를 둘러싼 의혹이 방대하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조사에 앞서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또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끝내는 대로 옛 사법행정 수뇌부의 신병처리 방향도 결정한다. 아울러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옥중 조사도 함께 시도할 계획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구속수사를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구속영장이 실제로 발부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을 구속 기소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까지 ‘공범’으로 적시했으나 결국 법원은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해 “공모관계가 성립되는지 의문”이라며 기각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두 전직 대법관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구속수사 성공 여부는 검찰이 임 전 차장과의 공모관계를 입증하거나 지금껏 수사력을 집중해온 ‘판사 블랙리스트’ 등의 의혹에서 새로운 혐의를 밝혀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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