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59·미국명 Jim Yong Kim) 세계은행 총재가 다음 달 1일 사임할 것이라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임기를 3년 반 가량 남겨둔 김 총재가 갑작스럽게 중도 하차하는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김 총재는 이날 성명을 내고 “극심한 빈곤을 종식시킨다는 사명에 헌신하는 열정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기관의 총재로 일한 것은 큰 영광이었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트위터 계정에도 글을 올려 “2월 1일 세계은행 총재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위대한 기관의 헌신적인 직원들을 이끌고 빈곤 없는 세상으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특권이었다”고 언급했다. 김 총재는 이날 오전 이사회에서 사임할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향후 진로와 관련해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춘 민간 기업에 합류할 것”이라며 “민간 부문에 참여하는 기회는 예상 못 했던 것이지만, 이것이 기후 변화와 같은 글로벌 중요 이슈와 신흥시장의 인프라 부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이라고 결론내렸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세계은행은 성명을 내어 내달 1일부터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세계은행 최고경영자(CEO)가 임시로 총재를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에서 출생한 김 총재는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아이오와주로 이주했으며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 의대 교수로 지냈다.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을 지낸 보건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2009년 한국계 최초로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한 곳인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김 총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2012년 아시아계 최초로 세계은행 총재가 됐고 2016년 9월 연임에 성공했다. 2017년 7월 1일부터 5년 임기를 새로 시작한 김 총재의 두 번째 임기는 2022년 6월 30일까지였다. 1945년 세계은행 설립 이후 김 총재 이전까지 총재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김 총재의 사임과 관련해, AP는 “김 총재가 임기가 만료되기 3년 전에 예기치 않게 떠나는 것은 미국이 세계은행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대해 불만을 지닌 다른 국가들과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 치열한 싸움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는 “김 총재가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적 충돌은 피했지만, 그의 정책 접근은 기후 변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과 때때로 불화했다”며 세계은행은 미국 석탄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달리 석탄 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BBC는 또한 작년 4월에는 중국에 대한 대출과 관련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세계은행의 대출 구조가 바뀌기도 했다고 거론했다. 미국은 세계은행이 중국 등 고소득 국가에 너무 많은 대출을 해준다며 많은 불만을 표시해왔다. AFP는 “세계은행 직원연합은 2016년 직원들 사이의 높은 불만을 표시하면서 세계은행이 ‘리더십 위기’에 직면했다고 주장하고 조직 통제를 위한 ‘밀실 거래’를 끝낼 것을 촉구했다”며 김 총재의 긴축 재정과 직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대한 내부의 반발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반면 로이터는 세계은행 이사회에 정통한 2명의 관계자가 “김 총재는 자진해서 떠나는 것이며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밀려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총재의 결정은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전했다.
후임자 선정과 관련, 블룸버그는 미국이 가장 많은 돈을 내는 세계은행의 총재는 전통적으로 미국인이었고 트럼프 행정부는 김 총재 후임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추천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부 국가는 신흥 시장 국가의 대표자를 총재로 추대하려 하고 있다. 세계은행 총재는 189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이사회에서 선정한다. 세계은행은 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정부 기반 공급원이며 전 세계에 걸친 프로젝트와 관련해 저비용 대출을 해준다고 AP는 보도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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