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은 ‘경기’보다 ‘연기’에 가깝다는 말이 많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음악에 빠져들어 몸으로 표현해내야 하고 심사위원 채점에도 예술점수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차준환(18·휘문고)은 기술의 안정성과 함께 특히 표현력이 뛰어난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딱히 취미가 없는 차준환의 유일한 취미는 음악 듣기다. 사실 취미라기보다는 연기력을 기르기 위한 습관 같은 것이다. “헤드폰 음량을 아주 크게 하고 음악을 들어요. 저는 연기하는 음악의 배경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아무 생각 없이 크게 듣다 보면 숨어 있는 음들이 느껴지면서 어떤 식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머릿속에 그려져요.” 그는 “지금까지는 연기 배경음악으로 대중적인 음악은 잘 안 써왔는데 언젠가 뮤지컬 넘버는 꼭 해보고 싶다. ‘레미제라블’을 가장 좋아해서 영화도 다섯 번 넘게 봤다”고 했다.
차준환은 어릴 적 축구·발레·수영·배드민턴 등 여러 운동을 경험한 끝에 피겨를 택했다. 워낙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팝송 듣는 것도 좋아했다고. 그는 “가족이나 친척 중에 운동하는 분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병원에서 검사 같은 것을 해보면 운동은 젬병이라고 나왔다”면서 “타고난 것은 절대 아니고 그나마 노력이 잘 통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하나의 쿼드러플(4회전) 점프 과제를 완성 수준에 올려놓으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할까. 3회전 점프의 경우 중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5종을 ‘마스터’했던 차준환은 “4회전 점프 하나를 완벽에 가깝게 제 것으로 만들기까지는 2,000번 연습도 부족하다”고 했다. “잘하는 선수들도 다 어느 정도 실패 확률을 안고 있어요. 확률을 어디까지 낮추느냐가 관건인데 정말 너무 많이 연습하다 보니 잘 돼도 생각보다 감흥이 없어요. 완성 단계에 들어갔다는 감이 오면 ‘아, 이제야 되네’라는 허탈함밖에 안 느껴져요.”
‘피겨 아이돌’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다 보니 연기 뒤 얼음 위로 선물이 비처럼 쏟아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로 하나만 꼽기는 어렵다며 곤란해한 차준환은 “팬이 직접 만든 제 피겨(모형 인형)가 아무래도 기억에 가장 남는다. 의상부터 장식까지 저를 똑 닮았다”며 “그것 말고도 모든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3월18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개막하는 세계선수권은 차준환에게 있어 생애 첫 세계선수권이다. 부상 탓에 지난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을 포기한 하뉴 유즈루(일본)도 이 대회 출전을 목표로 재활 중이다. 하뉴는 올림픽 2연패를 자랑하는 세계 최강. 차준환과는 토론토 훈련장 동료이면서 코치(브라이언 오서)도 같다. 차준환은 “워낙 여러 나라 선수들이 많이 오는 훈련장이라 (하뉴와는) 오며 가며 인사하고 가끔 얘기를 나누는 정도”라며 “물론 메달을 따고 돌아가면 서로 축하해준다”고 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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