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긴축정책에 이중으로 급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지난 2015년 ‘제로금리’ 정책 종료 선언 이후 3년여 동안 이어온 통화긴축정책의 조기 종료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연준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당사국인 중국과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기 위축이 가시화하고 있는데다 지난해 말부터 한 달 넘게 이어진 미 연방정부 ‘셧다운(정부 업무 일시정지)’으로 가뜩이나 둔화하는 미국 성장률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추가 금리 인상’을 향후 정책 방향에서 배제했다. 이뿐 아니라 보유자산을 축소하며 시장의 돈줄을 조이던 계획도 조기에 끝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 긴축을 끝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경기가 침체에 빠졌던 뼈아픈 경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하지만 경기 둔화에 대한 연준의 발 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경기 하강 신호는 점차 짙어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미국 경제를 부양했던 감세 효과가 사라지면서 3%대 ‘깜짝 성장’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관측과 함께 올해 미 경제 성장률이 1~2%대로 급속히 둔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연준은 30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현행 2.25~2.50%로 동결하면서 FOMC 성명서에 ‘점진적인 추가 금리 인상’ 문구를 뺐다. 2015년 12월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한 후 지난해 12월까지 총 아홉 차례의 금리 인상 행진 과정에서 꾸준히 포함됐던 상징적 표현을 삭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연준의 긴축정책이 3년여 만에 종착점에 들어서면서 올 상반기 금리 동결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논거가 다소 약해졌다”면서 “현재 기준금리는 FOMC가 평가하는 중립금리 범위 내에 있다”고 말했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 압력 없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이상적 금리 수준으로 일종의 연준 목표치로 언급된다.
연준이 시장의 예상보다도 분명한 ‘비둘기파 색채’를 드러낸 것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들까지 꾸준히 불거지며 시장불안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시장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세계 경제 및 금융상황이 금리 인상에 인내심을 갖게 하는 요소’라고 평이하게만 언급했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데 대한 경계감이 정책 노선 전환의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3.7%에서 21일 3.5%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나 홀로’ 질주하던 미국 경제의 둔화세가 올 들어 확연해지며 물가 상승 압력이 낮아진 것도 연준이 긴축정책에 급브레이크를 거는 주요인이 됐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2·4분기와 3·4분기에 각각 4.2%, 3.4%를 기록했다가 4·4분기에는 2.6%로 내려앉은 것으로 전망된다. 미 상무부가 당초 이날 발표할 예정이던 지난해 4·4분기 성장률 속보치는 셧다운 여파로 연기됐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토대로 이같이 보도했다. WSJ 조사에 따르면 미 성장률은 올 1·4분기 1.8%까지 추가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서 발표된 미 공급관리자협회(ISM)의 지난해 12월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는 54.1로 2016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그쳤다.
이날 연준은 이와 함께 낸 별도 성명에서 필요한 경우 보유자산 축소 계획의 속도를 늦추는 데 열려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연준의 자산 축소는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는 긴축 효과가 있는데 이를 천천히 이행하거나 조기에 끝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저금리 속에 기업들의 부채가 급증한 반면 경기 둔화로 실적이 악화할 조짐에 변동성이 커진 금융시장의 긴장상황을 해소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수석 경제자문은 연준이 강경한 긴축 노선을 철회하기를 원했던 시장의 바람대로 연준의 행보가 크게 ‘유턴’함에 따라 연준에 대한 시장 인식이 ‘초비둘기(uber dove)’로 바뀌었다며 다음에 나올 점도표와 경제전망은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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