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들어가고 싶으면 책을 쓰라는 말이 있었어요. 문재인 정부 처음에는 그냥 우스갯소리로 치부했는데, 점점 실감이 되는 말이네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반 청와대 참모로 입성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책, 그것도 경제와 관련해 알기 쉽게 책을 썼다는 것이어서 저서를 집필해야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실제 ‘독서가’로 유명한 문 대통령은 책을 읽고 저자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권 초반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5060 비하’ 발언으로 사퇴한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추석 때 김 전 보좌관이 쓴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고 그를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에 영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청와대 경제보좌관으로 낙점을 했지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문 대통령이 장 전 실장 발탁 배경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쓴 ‘한국 자본주의’와 ‘왜 분노해야 하는가’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도 책은 아니지만 그의 논문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제기됩니다. 그는 2014년 발표한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 논문을 썼고 이에 힘입어 청와대로 발탁됐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문 대통령의 ‘책 사랑’은 유별납니다.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는 지난해 12월 한 종합지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아버지로서 어떤 분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늘 과묵하셨고 항상 책을 끼고 사셨어요. 식사를 하실 때도, 휴가를 가서도 책만 읽으셨어요. 스스로 활자중독이라고 인정하실 정도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자녀들에게도 책을 많이 읽게 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어릴 때 가족이 다 같이 대형 서점에 가는 일이 저희 집의 외출행사였어요. 아버지는 저와 동생(문다혜씨)에게 책을 추천해주시기도 하고 직접 고르게도 하셨어요. 그 영향 때문에 저도 책을 많이 읽어왔고, 지금도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의 책을 쓴 사람들이 청와대, 정부 관계자로 발탁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11월 7일 취임한 권구훈 북방경제위원장도 책을 통해 발탁된 케이스입니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직접 추천해서 발탁했다”며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난 여름 휴가 때 대통령이 책 ‘명견만리’를 읽었는데 TV에서 명견만리도 보고 권 위원장의 강연에 감명을 받아 인사수석실에 추천을 했고 검증을 거쳐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취임한 이정동 경제과학특별보좌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 특보가 쓴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을 정독하고 감명을 받았다고 청와대는 설명했습니다. 실제 문 대통령은 30일 이 특보와 오찬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대선 때 한창 바쁜데도 이 교수의 책을 읽었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말할 때 잘 써먹기도 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에는 설을 맞아 청와대 전 직원에 ‘축적의 길’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 같은 발탁방식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책을 쓸 정도면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고 꿰뚫고 있다는 뜻으로 전문성은 충분히 입증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기업인, 관료 등보다는 현장감은 다소 떨어질 가능성도 있지요.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시간을 두고 경제 성적표가 말을 해줄 것입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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